아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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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퇴근법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10. 24. 15:21
“야근이 많겠어요.” “6시면 보통 퇴근해요.” 이 대화를 도대체 몇 년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이 대화는 토씨 하나 안 변하고 영원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 대답에 놀라는 상대의 반응도 유구한 전통이다. 놀랄 만하다. 나도 신입사원 때 6시 정각에 퇴근하는 선배들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진짜 퇴근하신다고요? 신입사원인 저도 6시 퇴근이라고요? 이렇게 퇴근해버리면 내일 아침 회의는 어쩌나요? 광고회사는 밤새서 아이디어 내는 곳 아닌가요? 매일 퇴근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며 질문을 100개씩 삼켰다. 그렇게 질문으로 가득 찬 시절을 지나, 나도 이제 6시 퇴근을 타협 불가능한 우리 팀 제1원칙으로 세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 팀으로 발령 난 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말한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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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나를 드러내는 ‘퍼스널 브랜딩’ 노하우 by. 이진선아하 에세이 2022. 10. 13. 13:43
꾸준히 글만 쓴다고 구독자가 늘어날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언제부터 글을 썼길래 브런치 구독자를 이만큼 모았느냐고. 글쟁이들만 모인 플랫폼에서 6,500여 명의 구독자를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 질문은 전제가 잘못됐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글을 쓴 기간이나 글의 개수는 구독자수와 상관관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중요한 개념이다. 이걸 알고 글을 쓰는 사람과 모르고 글을 쓰는 사람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벌어진다. 글을 오래 썼다고 해서(시간의 양), 글의 수가 많다고 해서(산출물의 양) 구독자가 당연히 많은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시간과 산출물의 양이 구독자수와 비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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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 차고 건너가기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8. 22. 11:07
‘회사도 한 번 안 다녀본 사람이!’라는 말은 보통 누군가를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단 한 명에게 이 말은 찬사가 된다. 바로 의 윤태호 작가다. 회사도 한 번 안 다녀본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걸까. 대기업의 생리를 이토록 성실하게, 이토록 사실적으로, 이토록 통찰력 있게, 이토록 설득력 있게, 동시에 이토록 재미있게(내가 아는 모든 칭찬을 여기에 다 쏟아 붓고 싶은 심정이다) 그려내기 위한 윤태호 작가의 노력, 몸의 일부분을 갈아 넣었음이 분명한 노력을 생각하면 나는 스크롤을 내리기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죄송한 그 마음을 언제나 이겨버리긴 했지만. 을 볼 때마다 내 무릎을 꿇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오과장의 팀원이 요르단 사업에서 저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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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없는 내향적인 직업인의 강렬한 무기 by. 이진선아하 에세이 2022. 8. 4. 15:17
존재감 없던 내가 글 하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팀 매니저가 다급히 달려왔다. “진선 씨, 이게 무슨 일이야? 글을 쓰고 있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이사님이 전화를 하셨어. 진선 씨가 글을 쓰고 있는 게 맞냐고.” 정식으로 브런치를 시작한 게 2019년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만 10년 넘게 하다가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마침내 글을 쓰게 됐다.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했는데 그중 가 브런치 추천글로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이 글을 당시에 다녔던 회사의 이사님이 우연히 SNS에서 본 것이다. 이사님은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정 안 되면 사내 강연이라도 부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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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7. 19. 19:16
일이라는 놈은 본디 성격이 고약하고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법이라 잠깐만 방심을 해도 일상을 확 잡아채다가 무너뜨려버린다. 가지고 있는 카드도 어찌나 많은지. ‘지금 당장’ ‘반드시 내일까지’ ‘무조건 이 일부터’라는 카드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서 자기부터 챙기라고 성화다. 그렇게 일의 말을 다 들어주다가는 우리 몸이 남아나지 않는 법. 광고회사에서 십 수 년 간 일을 하다 보니,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에서 일에게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 이제는 일의 힘을 빼앗는 법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남다른 비법은 아니지만, 그럼 한번 소개해볼까. ‘일의 인수분해’.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냥 일을 분해하라는 것이다. 마치 낙지 탕탕이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잘게 쪼개서 일의 힘을 분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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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야에서 존재감을 가진다는 것 by. 이진선아하 에세이 2022. 7. 11. 14:17
월급 50만 원짜리 경리로 시작한 첫 커리어 사회 부적응자. 20대 내내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여겼다. 첫 회사는 부부가 경영하는 자판기 회사였다. 갓 20살이 되자마자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조직에 월급 50만 원짜리 경리로 입사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교복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미술학원을 다닐 만큼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직원들의 책상을 닦고 커피를 타는 것이 내 첫 업무였다. 직원 중 한 명이 커피가 너무 진하다며 다음부터는 연하게 타달라고 했다. 커피가 너무 쓰니 우유를 더 넣어달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말을 들었다. 물을 더 넣어 묽게 해달라는 의미라는 걸 며칠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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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으로 이직했습니다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6. 23. 17:24
사원, 대리, 차장, 부장까지는 진급이었다. 진급할 때마다 새 명함이 나왔고, 책상 앞 이름표가 바뀌었다. 일주일 정도 곳곳에서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솔직히 그렇게 축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일을 하는걸. 물론 조금씩 말의 무게가 달라지고, 처리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달라졌지만 그건 진급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내가 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 채로 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팀장이 되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들은 한 번쯤 그 생각을 거쳐간다. 매일 눈앞에 보이는 팀장을 보며, 팀장이 하는 일을 보며, 내 능력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나는 저 정도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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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정보 수집법 by 진민영아하 에세이 2022. 6. 15. 09:59
몇 해간 고정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아침 루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7시에서 9시 사이 출근 전 두 시간가량 간단한 집안일을 하며 라디오를 듣는 일이다. 하루치 굵직한 국내외 정세는 이 시간에 전부 파악한다. 조간지 한 부를 열람하는 것에 준하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잘 정제된 언어로 접할 수 있는 귀한 아침 시간이다. 정보는 까다롭게 선별하고 인색하게 소비한다. 한 가지 신뢰할 수 있는 매체를 선정해 그것이 생산하는 군더더기 없는 60분어치 보도에 귀를 기울인다. 이 한 시간을 매일 몇 해간 습관화하니, 적어도 나의 무지로 인해 사회적 실례를 범할 일은 없다.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정국에 눈이 어두우면 나도 모르는 새 남에게 짐을 지우는 시대다. 라디오를 제외한 정보 소식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TV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