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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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7. 19. 19:16
일이라는 놈은 본디 성격이 고약하고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법이라 잠깐만 방심을 해도 일상을 확 잡아채다가 무너뜨려버린다. 가지고 있는 카드도 어찌나 많은지. ‘지금 당장’ ‘반드시 내일까지’ ‘무조건 이 일부터’라는 카드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서 자기부터 챙기라고 성화다. 그렇게 일의 말을 다 들어주다가는 우리 몸이 남아나지 않는 법. 광고회사에서 십 수 년 간 일을 하다 보니,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에서 일에게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 이제는 일의 힘을 빼앗는 법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남다른 비법은 아니지만, 그럼 한번 소개해볼까. ‘일의 인수분해’.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냥 일을 분해하라는 것이다. 마치 낙지 탕탕이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잘게 쪼개서 일의 힘을 분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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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야에서 존재감을 가진다는 것 by. 이진선아하 에세이 2022. 7. 11. 14:17
월급 50만 원짜리 경리로 시작한 첫 커리어 사회 부적응자. 20대 내내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여겼다. 첫 회사는 부부가 경영하는 자판기 회사였다. 갓 20살이 되자마자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조직에 월급 50만 원짜리 경리로 입사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교복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미술학원을 다닐 만큼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직원들의 책상을 닦고 커피를 타는 것이 내 첫 업무였다. 직원 중 한 명이 커피가 너무 진하다며 다음부터는 연하게 타달라고 했다. 커피가 너무 쓰니 우유를 더 넣어달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말을 들었다. 물을 더 넣어 묽게 해달라는 의미라는 걸 며칠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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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으로 이직했습니다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6. 23. 17:24
사원, 대리, 차장, 부장까지는 진급이었다. 진급할 때마다 새 명함이 나왔고, 책상 앞 이름표가 바뀌었다. 일주일 정도 곳곳에서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솔직히 그렇게 축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일을 하는걸. 물론 조금씩 말의 무게가 달라지고, 처리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달라졌지만 그건 진급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내가 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 채로 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팀장이 되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들은 한 번쯤 그 생각을 거쳐간다. 매일 눈앞에 보이는 팀장을 보며, 팀장이 하는 일을 보며, 내 능력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나는 저 정도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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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정보 수집법 by 진민영아하 에세이 2022. 6. 15. 09:59
몇 해간 고정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아침 루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7시에서 9시 사이 출근 전 두 시간가량 간단한 집안일을 하며 라디오를 듣는 일이다. 하루치 굵직한 국내외 정세는 이 시간에 전부 파악한다. 조간지 한 부를 열람하는 것에 준하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잘 정제된 언어로 접할 수 있는 귀한 아침 시간이다. 정보는 까다롭게 선별하고 인색하게 소비한다. 한 가지 신뢰할 수 있는 매체를 선정해 그것이 생산하는 군더더기 없는 60분어치 보도에 귀를 기울인다. 이 한 시간을 매일 몇 해간 습관화하니, 적어도 나의 무지로 인해 사회적 실례를 범할 일은 없다.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정국에 눈이 어두우면 나도 모르는 새 남에게 짐을 지우는 시대다. 라디오를 제외한 정보 소식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TV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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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과 에베레스트 by 도대체아하 에세이 2022. 1. 7. 14:39
어쩐지 자꾸만 헷갈리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아는 단어인데 입에서 나올 때는 음절의 순서가 뒤섞이는 단어들입니다. ‘에베레스트산? 아닌가, 에레베스트산인가?’, ‘스튜디어스? 아니 참 스튜어디스인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한번 헷갈리기 시작하면 이후로는 더 자꾸 헷갈리기 쉽습니다. 세간에는 ‘노인코래방’과 ‘알르레기’, ‘멸린말치’와 ‘야치참채’ 같은 단어도 떠돌고 있죠. 이런 것을 보면 제법 흔한 현상인 것도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국사를 배우면서 저에게는 그런 단어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바로 ‘근초고왕’입니다. 백제의 제13대 왕이자 강력한 고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며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는 근초고왕. 중요해서 시험 문제로 나올 확률도 높은 인물이었죠. 그래서 ‘근초고왕’ 네 글자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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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날들 by 도대체아하 에세이 2021. 11. 26. 15:06
어느 날 친구가 저에게 적성검사를 받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적성검사라니, 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습니다. ‘이 나이에 웬 적성검사여?’ 싶었는데, 친구 말로는 주위의 학부형 여럿이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자녀들이 적성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나도 한번 받아볼까?’ 하게 되는 거라네요. 친구 역시 검사를 받으려고 마음먹은 참이라고요. 중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적성이 궁금하고, 지금보다 더 잘 맞는 일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한 이들이 많은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저는 학창시절에 수업을 제대로 듣는 것이 몹시 어려운 학생이었습니다. 그건 저의 잘못이기도 하고 잘못이 아니기도 했는데,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듣겠다고 마음먹은 시간이어도 불가항력처럼 이내 딴생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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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로 살란다 by 도대체아하 에세이 2021. 10. 28. 15:42
초등학생 때 만난 어느 담임선생님은 종종 갱지를 나눠 주고 “3등분으로 접으세요”라고 주문했습니다. 세 구역으로 나뉜 종이에 선생님을 따라 필기를 하기도 하고, 간단한 쪽지 시험을 보기도 했죠. 저는 그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지시하면 마음속으로 즐거워했답니다. 종이를 자로 재지 않고도 3등분으로 접는 것엔 자신 있었거든요. 어쩐지 그것이 아주 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종이를 후다닥 잽싸게 접은 다음 짝꿍의 종이도 접어주고, 앞뒤에 앉은 친구들이 내미는 종이도 접어주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종이를 3등분으로 접을 일은 점점 줄었습니다. 사회로 나오니 그럴 일이 전혀 없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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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 by 도대체아하 에세이 2021. 9. 3. 09:33
이 집에 이사 온 지 어느덧 반년도 더 지났습니다. 이사할 즈음 저는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하는 다른 일들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이사에 크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삿짐만 다 들여놓은 후에, 나머지는 살면서 손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고는 반년이 후딱 지나버렸습니다. 짐작들 하셨겠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집은 ‘이삿짐만 다 들여놓은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도무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면 저 일이 기다리고 있는 날들의 연속이죠.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이런저런 정리를 해왔지만 제가 바라는 그림과는 거리가 영 멀기만 합니다. 일단 거실 벽 한쪽에 둔 커다란 수납장부터 문제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