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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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망치는 말투 by. 후루꾸아하 에세이 2025. 3. 6. 05:07
아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요. 아빠: 조종사는 아무나 되는 줄 아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말투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님이 아니라도 주변에 한두 명은 꼭 이런 비관적이고 남의 기분 망치는 말투를 가진 사람이 있단 말이죠. 요즘은 특히 대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저 OO 전공해요” 하면 “그거 전부 AI로 대체되는 거 아님?” 이러는 놈들이 많습니다. 네가 AI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 너는 AI 없어도 대체돼. 분위기 안 깨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대체된다고. 사실 이 정도는 뭐 실제로 가능성 있는 말인가 싶기라도 합니다. 예전에 AI가 없었을 때는 “네 전공 무인도 가면 아무 쓸모 없잖아” 이러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실제로 세 명 정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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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하다 by. 집밥 둘리 박지연아하 에세이 2025. 2. 19. 22:58
우리는 사소한 것들이 지닌 중요성을 잠시 잊곤 합니다. 최근 집에 전자레인지가 한동안 없어지면서 ‘아, 전자레인지 하나가 이렇게 큰 역할을 했었구나’하고 새삼 느꼈어요. 여러분은 요즘 어떤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시곤 하나요? 비싼 외식을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의 공간은 집에서 평범하게 만든 소고기뭇국, 총각김치, 된장찌개, 소시지 반찬으로 채워야 비로소 몸과 마음에 진짜 배부름을 가져다주는 듯해요.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집밥을 하고요. 그런 평범한 집밥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 수만 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르지만, 결국 정말 비슷해서 신기하기까지 한 공감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이 아주 소중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과 따뜻함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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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리의 K-할머니와 냄비밥아하 에세이 2025. 1. 8. 10:28
아시아 식탁의 기본이자 선(禪)의 근본인 밥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내 어린 시절의 모든 식사마다 올라오던, 김이 모락모락 나고 쫀득하고 달콤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밥 한 그릇.기억이라는 건 4~5세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맹세컨대 눈만 감으면 이가 하나도 나지 않은 입속에 나를 달래며 넣어주던 따뜻한 전분 덩어리가 선사하는 그 편안한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강건하고 까다로운 우리 가족은 대대로 찰진 밥을 먹고 자랐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밥은 나를 튼튼하고 똑똑하게 키웠고 수학과 과학, 역사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했다. 쌀은 내 시력을 예리하게 만들었고 치아는 가지런하게, 손톱에는 윤기가 흐르도록 해주었다. 그땐 착한 일을 하면 매콤한 돼지고기 요리를 갓 지은 밥 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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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비우는 하루 by 마야 안젤루아하 에세이 2024. 12. 3. 19:59
종종 우리는 우리의 일들이, 크건 작건, 사소한 부분까지 지속적으로 손길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는 붕괴하고 우리는 우주에서 제자리를 잃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설혹 사실이라면 그건 우리의 상황이 어차피 무너지고 말았을 아주 일시적인 상황이었기에 그렇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나는 내게 자리를 비우는 하루를 허한다. 자리비움의 전날 밤, 나를 매어두고 있던 굴레들을 풀기 시작한다. 동거인들,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24시간 동안 나와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알린다. 그런 다음 전화 연결을 끊어둔다. 라디오 다이얼을 음악만 나오는 방송국으로, 기왕이면 마음을 어루만지는 옛날 명곡들이 나오는 채널로 맞춘다. 아주 뜨거운 물을 채운 욕조에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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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이루는 경이의 존재를 감각하는 끝없는 여정 by 낸 셰퍼드아하 에세이 2024. 9. 25. 17:55
내가 여행에 나선 것은 순수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 애정은 어린 시절 모나들리아흐 산맥 중턱에서 바라본 스고란 두브 너머 협곡의 짙은 보랏빛을 꿈속에 보면서 시작되었다.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는 그 쪽빛 협곡이 나를 평생 동안 산으로 끌어당겼다. 당시 내게 케언곰 산맥에 오른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영웅만이 해낼 수 있는 전설적 과업이었다. 어쨌든 어린아이가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춥지만 폭설이 그쳐 쾌청하고 눈부시던 10월의 어느 날, 나 홀로 가슴 두근거리며 안 에일레인 호수 위의 크레그 두브에 올랐을 때도 그것은 여전히 전설적인 과업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과를 훔친 아이처럼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올라갔다. 케언곰은 여전히 금단의 구역이었지만 내 평생 그 산맥에 그렇게 가까이 간 것은 처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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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 걸렸지, 이 모양의 나를 만나기까지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4. 7. 22. 20:45
여행 초반에는 모두 설렘 필터를 끼고 여행지를 둘러본다. 하지만 설렘은 곧 산화된다. 심드렁 필터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갑자기 애틋 필터를 장착한다. 나의 여행은 한 번도 이 공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두 달의 파리 여행도 똑같은 공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파리와 산뜻하게 이별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정작 겪어보니 참으로 곤란했다. 나는 참으로 파리와의 이별식을 혼자 요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나타나니 자꾸 또 욕심을 내게 되었고, 막상 떠난다 생각하니 무엇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아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길을 걷던 내 눈에 술집 간판 하나가 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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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각자 자라는 속도가 다를 뿐 by 이소영아하 에세이 2024. 6. 11. 18:51
어릴 적 명절이 되면 경기도 외곽에 있는 이모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모집 뒤에는 낮은 산이 있었는데, 산 아래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이모는 추석마다 이 소나무 숲에서 주운 솔잎으로 송편을 쪄주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그 소나무 숲에 갔는데, 소나무 중 일부는 리기다소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나무는 한곳에서 잎이 두 개가 나지만,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세 개가 난다. 이들은 1970년대 황폐해진 우리 산에 식재된 속성수 중 한 종이다.속성수는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일컫는다. 우리 산에는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등 속성수가 많다. 1960〜70년대 황폐한 우리 땅을 하루빨리 푸르게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심어진 나무가 이제는 아름드리나무로 커버렸다.지구에는 최소 6만 종의 나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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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킬 사람이 오로지 나뿐이라면아하 에세이 2024. 3. 30. 13:35
회사 생활은 아무튼 불행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잘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늘 겉돌았다. 당시에 친한 동료들은 있었지만 회사를 떠난 후 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를 직업으로 택했다면 조금 나았을까. 다른 방향으로 20대를 살 수 있었을까. 월급쟁이라는 건 안정적이기 때문에 중독성이 강하다. 비슷한 일을 끊임없이 해내면 되는 것뿐이고, 이번 달에도 다음 달에도 적지만 고정적인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충분히 안도하고 지내도 괜찮았다.나는 서비스직에 종사했다. 좋은 손님들도 많았지만 나쁜 손님도 많았다. 한번은 어떤 손님과 마찰이 생겼다. 클레임 전화를 응대하던 중 상대방이 내게 심한 욕설을 했고 거기에 발끈해 "욕하지 마세요"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남자는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