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리를 비우는 하루 by 마야 안젤루아하 에세이 2024. 12. 3. 19:59
종종 우리는 우리의 일들이, 크건 작건, 사소한 부분까지 지속적으로 손길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는 붕괴하고 우리는 우주에서 제자리를 잃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설혹 사실이라면 그건 우리의 상황이 어차피 무너지고 말았을 아주 일시적인 상황이었기에 그렇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나는 내게 자리를 비우는 하루를 허한다. 자리비움의 전날 밤, 나를 매어두고 있던 굴레들을 풀기 시작한다. 동거인들,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24시간 동안 나와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알린다. 그런 다음 전화 연결을 끊어둔다. 라디오 다이얼을 음악만 나오는 방송국으로, 기왕이면 마음을 어루만지는 옛날 명곡들이 나오는 채널로 맞춘다. 아주 뜨거운 물을 채운 욕조에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다가, 아침의 탈출 때 입을 옷을 정해 늘 어놓고,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두 다리 쭉 뻗고 푹 잔다.
아침에 나는 눈이 저절로 떠질 때 깨어난다. 시계도 맞춰 놓지 않고, 몸속 시계에도 언제 일어나야 한다고 일러두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한 신발과 캐주얼한 옷으로 차려입고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선다. 도시에 살고 있다면, 거리를 돌아다니고, 윈도우 쇼핑을 하고, 건물들을 바라본다. 공원, 도서관, 고층 빌딩 로비,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벗어나는 날 나는 기억상실에 걸리려 애쓴다. 내 이름이나 사는 곳, 내 어깨에 얼마나 많은 긴급한 책임들이 얹혀 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 아주 절친한 친구라도 마주치는 건 질색이다. 그랬다간 잠시 잊고자 하는 내 인생의 형편과 내가 누구인지 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루쯤 자리를 비우는 날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과거를 미래와 분리하는 날. 직장, 연인, 가족, 고용주, 친구들은 우리가 없어도 하루쯤 버틸 수 있으며, 자존심을 굽히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다면, 우리가 없어도 영원히 지낼 수 있다.
누구나 하루쯤 자리를 비우는 날을 보낼 자격이 있다. 아무런 문제와도 씨름하지 않고,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않는 날이. 누구나 제 발로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걱정거리로부터 떠날 필요가 있다. 몇 시간 동안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개미들의 신비한 세상과 나무 우듬지의 차양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잠깐 물러선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기고 어떤 이들이 비난할 것처럼 우리가 무책임해지는 것은 아니며, 더 유능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한다는 편이 옳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항상, 회피하려 했던 문제들에 답이 나왔으며 달아나고 싶던 복잡한 혼란스러움이 내가 자리를 비운 새 해결되었음을 깨닫고 놀라곤 한다.
자리를 비우는 하루는 봄날의 원기 회복제 같은 효과가 있다. 마음의 앙금을 흩뜨리고, 우유부단함을 변화시키고, 정신을 새롭게 한다.
✅ 글: 마야 안젤루
미국의 시인, 작가, 민권운동가.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28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친할머니 손에 자라고, 일곱 살에 성폭행당한 충격으로 열세 살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열여섯 살에 미혼모가 되는 등 파란만장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69년, 자신의 열일곱 살 때까지의 삶을 다룬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3년 마지막으로 발표한 에세이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권의 책을 펴내며, 자신만의 ‘자서전적 소설’ 장르를 구축했다. 그 외에도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1971년에 발표한 첫 시집 《내가 죽기 전에 차가운 물 한 잔만 주오》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다재다능한 마야 안젤루는 가수, 작곡가, 배우, 극작가, 영화 감독, 프로듀서, 교수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고 마 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와 함께 민권운동에도 힘썼다. 1993년에는 빌 린턴의 요청을 받아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정식 학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웨이크포리스트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받아 1981년부터 2011년까지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0년에 국가예술훈장을, 2011년에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고, 오십여 개가 넘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마야 안젤루는 201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출처: 굳세고 다정하고 가능한 한 많이 웃으며
본 사이트에 게재된 콘텐츠는 (주)위즈덤하우스에서 관리하고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입니다. 사전 동의 없는 무단 재배포, 재편집, 도용 및 사용을 금합니다. aha.contents@wisdomhouse.co.kr
'아하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드워드 리의 K-할머니와 냄비밥 (0) 2025.01.08 산을 이루는 경이의 존재를 감각하는 끝없는 여정 by 낸 셰퍼드 (3) 2024.09.25 참 오래 걸렸지, 이 모양의 나를 만나기까지 by 김민철 (0) 2024.07.22 그저 각자 자라는 속도가 다를 뿐 by 이소영 (0) 2024.06.11 나를 지킬 사람이 오로지 나뿐이라면 (0) 202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