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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생이 죽은 후 나는 경외심을 찾았다.’
    아하 스토리 2024. 6. 24. 17:56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2019년 1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오랜 파트너 아이작과 함께 힘든 시합을 끝내고 땀에 흠뻑 젖은 채 가뿐한 마음으로 핸드볼 코트를 나서며 운동 가방 위에 놓아두었던 아이폰을 들여다보았다. 메시지 두 통이 와 있었다. 제수인 킴이었다.


    최대한 빨리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그로부터 15분 후 도착한 어머니의 메시지.

     

    대커, 다 끝났다. 롤프가 칵테일을 맞았어.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해.

     

    롤프는 나보다 1년 늦게 태어난 내 남동생이다. ‘칵테일’은 동생이 투약한 말기환자용 아편제 혼합물로, 보통은 한두 시간이면 사망에 이른다. 나는 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킴이 롤프의 입가에 전화기를 가져다 댔다. 성대가 깊고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가는 동생이 가르랑가르랑하는 소리가.

    동생 부부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롤프는 삶의 마지막 몇 주간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아래층 침대에 누워 있었다. 롤프의 얼굴은 통통했고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장암 투병으로 움푹 팼던 눈과 수척했던 뺨은 이제 사라지고, 긴장되고 축 처졌던 입가 피부도 편안하게 펴졌다. 입꼬리는 위로 살짝 말려 있었다.

    나는 뼈가 둥그렇게 돌출된 동생의 왼쪽 어깨에 오른손을 얹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동생과 헤엄치던 강가에서 찾곤 했던 부드러운 화강암 조각들을 손에 쥐었을 때처럼 꼭 잡았다.

     

    롤프…. 나야, 대크….
    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동생이야.

     

    롤프의 호흡이 느려졌다. 그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인식하고 있었다. 롤프의 숨소리를 듣자니 우리가 형제로 살아온 장장 55년의 세월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롤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느껴졌다. 빛은 규칙적인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와, 살짝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기댄 우리 몸을 어루만졌다. 내 마음속 술렁거림, 머릿속에 꽉 박혀 있던 대장암 진행 단계 용어들, 새로운 치료법, 림프샘, 생존율 따위 말들이 차츰 흐려졌다. 동생 몸을 감쌌던 어떤 힘이 그를 데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롤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기분은 어떨까?
       죽는다는 것이 동생에겐 무슨 의미일까?


    마음속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경외심을 느끼고 있구나.

     

    그 압도적인 순간에 받은 느낌에는, 과거 내가 경외심을 느꼈던 크고(예를 들어 27년 수감 생활을 마친 넬슨 만델라가 5만 군중 속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봤을 때) 작은(어린 두 딸의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이중창을 들으며 오크 나무 위로 드리운 황혼을 바라봤을 때) 경험들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부분들이 있었다. 롤프가 떠나는 것을 보며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차분해졌다. 겸허해졌다. 순수해졌다. 나와 외부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사라졌다. 무언가 거대하고 따스한 것이 나를 감싼 듯 느껴졌다. 마음이 열려 호기심이 샘솟았고 한층 깨어났으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동생의 죽음 후,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내 경우에는 이젠 롤프만 한 구멍이 뚫린 삶으로. 뒤이어 덮쳐온 비탄 속에서 새벽이 밝기도 전에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깨어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전과는 전혀 다른 꿈들을 꾸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육상부 훈련차 달리고 있던 노란 반바지 차림 롤프가 불쑥 튀어나왔다. 롤프는 멈추더니 빙긋 미소 짓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입술을 달싹여 내게 들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어라고 말을 했다.

    맞닿은 구름들이 조금씩 이동하는 와중에 생겨나는 경계선에서 롤프의 얼굴 윤곽을 보았다. 버클리캠퍼스를 거닐던 중에는 나선형 삼나무 껍질에서 화학요법으로 진이 다 빠진 롤프의 눈빛을 보았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서는 동생 목소리를, 바람에서는 한숨 소리를 들었다.


    우리 마음은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다른 이와 함께한 경험을 통해 삶의 패턴을 이해하고, 다른 이의 목소리에서 인생의 중요한 주제를 발견하며, 다른 이의 손길에서 자신보다 커다란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안아주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롤프의 눈을 통해 세상의 경이로움을 보았다. 동생이 죽고 나는 경외심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57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그 거대한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던 나의 경외심 짝꿍이 더는 곁에 없었다.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경외심을 찾으라.

     

    나는 다시 살아갈 방법을 알아내고자 경외심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나는 우리 존재에는 육신의 마지막 숨과 함께 끝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산들바람과 강렬하고 따스한 햇살에 안겨 롤프의 존재를 느끼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동생과 내가 일반적으로 보고 듣는 것을 뛰어넘는 어떤 감정의 공간을 함께 인식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살아가며 함께 경외심을 느끼던 동반자들은 세상을 떠난 뒤 오히려 더욱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우리 곁에 남아 새로운 삶의 경이에 눈뜨게 해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을 경외심을 찾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매일 잠깐씩 짬을 내어 주변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을 접했다.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삶의 다양한 경이에 푹 빠져들었다. 이러한 탐구 과정이 결국 나만의 경험과 기억을 쌓고 꿈을 꾸고 통찰을 얻어 동생을 잃는 것에서 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울러 경외심이란 사실상 늘 곁에 있으며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일부인 상실과 트라우마를 딛고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며 수십만 명에게 행복에 대해 가르쳐왔다. 유치원의 둥그런 러그부터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의 대강의실, 교회 예배당, 교도소, 병원 무균실, 자연 속 소모임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 장소에서 거의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찾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20년 동안 행복에 대해 가르치며 나는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

     

    바로 ‘경외심’의 이로움, 나는 자신 외 대상에 감탄할 줄 아는 것이 건강과 웰빙에 얼마나 이로운지 목격했다. 경외심이란 음악, 시각예술, 종교, 과학, 정치, 인생을 바꿀 만한 통찰 등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신비를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정서다. 처음 세상에 태어나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까지 경외심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정서로, 삶의 수많은 경이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찰나 같은 인생 속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대한 신비에 경탄하게끔 우리를 인도한다. 결정적으로 잠시 동안 느끼는 경외심은 그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일상 어디에서나 경외심을 찾을 수 있다. 경외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을 쓰거나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호기심을 품고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살아온 배경이 어떻든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경외심을 찾을 수 있다.

     

     

     

    ✅ 출처: 경외심 -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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