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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관계 문제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아하 스토리 2024. 7. 9. 16:45

    두 살 터울의 형이 있는데 어린 시절 매일같이 형에게 맞고 살았다. 아버지도 자주 자식들을 때렸다. 고등학생 무렵 형은 가족 모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아침에는 걸핏하면 학교를 가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로 언쟁이 일어났고 급기야는 고함과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이 가족 모두를 한 방에 감금한 적도 있었다. 집 안에서 가장 어리고 힘도 약했던 나는 집에 계속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방으로 도망쳐 들어와서 문을 잠그면 형은 거칠게 문을 걷어차며 부수려고 했다. 이런 폭력과 괴롭힘은 초등학생 시절 내내 지속되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서 형을 용서한 적은 없다.

     

    가족의 어두운 이면은 대개 음지로 감춰지지만, 생각보다 많은 곳에 존재한다. 가족이든 아니든, 인간은 가까워질수록 애정이 커질 수도 있지만 싫어하는 감정도 그만큼 커지기 쉽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대로 집에 머무르도록 권장하던 시기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유례없을 정도로 가족과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때 가정폭력 상담도 급증했다.

     

    가족과 함께 있기만 해도 기분이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슨 수를 써도 상대방이 싫어진다면, 그 상대가 가족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족은 마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존재다. 겉보기에 잘 지내는 듯 보여도 구성원 중 누군가는 폭탄을 안고 있게 마련이다. 가족이란 어쩌다 보니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같이 있게 된 특수한 관계일 뿐이다.

     

    📍 ‘가족’이란 이름의 지옥을 만들지 않는 길

    - 억지로 식탁에 둘러앉을 필요 없다

    갈등을 참은 채로 계속해서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가까이 밀착된 생활을 지속한다면, 싸움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가족이 따로 생활하게 된 만큼 즐거운 교류도 없어진다. 가족 모두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식사 시간 뿐이라면 자연히 대화도 사라진다. 그러나 그 전까지 늘 집 안을 시끄럽게 했던 싸움이나 폭력도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말하자면 느슨한 형태의 별거 상태다. 쓸쓸한 가족이라고 하겠지만, 가정 내에서 계속되는 싸움만큼 소모적인 것은 없다. 가까이에서 자주 마주쳐봤자 불만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거리를 두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 한 명 한 명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증오도 누그러든다. 가족은 너무나 가까운 존재라, 사회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을 볼 때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확대 렌즈를 대고 보듯 가깝게 보여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마음을 계속 괴롭게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길 권한다. 한 명, 한 명을 이름으로 떠올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 씨’라는 본명으로 생각해본다. ‘엄마’ 같은 가족 호칭은 일단 머릿속에서 밀어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족 각자의 시점에 서서 그들의 인생을 상상해본다.

    가족을 해산하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가족을 새롭게 모으는 방법이다. 어디까지나 마음속에서지만. 물론 이런 정도로는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 훌륭한 가족상에 속지 않는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이 태곳적부터 높은 가치로 치켜세워졌던 것은 아니다. 19세기만 해도 자녀는 노동력으로 여겨져 지금처럼 애정을 쏟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20세기 초 즈음부터 대대적으로 모성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즉, 애초에 모성이란 아이를 사랑하라며 국가에서 지시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었다.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도 아주 옛날 옛적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19세기 후반부터 교과서나 잡지에 실렸으며, 이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국가에서 강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계몽적 움직임이 흐름을 타면 웬만해선 멈추지 않고 널리 퍼진다. 좋은 의도라는 선의가 있기에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와 괴로움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집에서 자랐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당신의 부족함이나 결핍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미디어의 허상과 당신의 삶을 견주며 가뜩이나 힘든 삶에 절망할 거리를 하나 더 더하지 않길 바란다.

     

    - 평생 떨어져 살아도 괜찮다

    가족과 계속 떨어져 살아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오래 떨어져 살았는데 부모의 병간호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러나 함께 지낼 때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계속 따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따로 잘 살았는데 꼭 다시 같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잠시 그 이유는 내려놓고 실제로 함께했을 때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있어서 즐거웠다면 기회가 될 때 다시 함께 살면 된다. 반면 마음이 잘 맞지도 않을뿐더러 위압적이거나 폭력을 계속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다.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다시 가까이에서 지내는 것이 과연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남은 인생에 좋은 일일까?

    무턱대고 가까워져서 불행한 싸움을 벌이는 것과, 애초에 싸울 빌미를 만들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 중 어느 쪽이 모두에게 이로운 결말이겠는가. 오랫동안 함께 지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기준은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는지 아닌지’다. 그것밖에 없다.

     

    📍 서드 플레이스로 도망쳐도 된다!

    ‘서드 플레이스third place’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정이 제1의 장소, 회사나 학교가 제2의 장소라면 그와는 다른 곳이 바로 제3의 장소, 서드 플레이스다. 자주 가는 도서관이나 카페가 있더라도 그저 앉아 있기만 할 뿐이라면 서드 플레이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서드 플레이스가 되려면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곳으로 말하자면 동네 술집 정도일까. 술집이 아니라도 괜찮다.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유대, 교감이 형성되는 곳이라면 서드 플레이스가 된다.
    사이좋은 가족이라고 해도 집에만 계속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세상과 접해야 숨이 트이고, 각자의 세상을 넓은 시야로 비교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지킬 수 있다. 서드 플레이스가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면,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학교나 집, 회사 혹은 밖에서 힘들 때, 또 다른 내 자리가 몇 군데 더 있다면 학교나 회사를 전부 포기하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기대고 도망칠 곳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 학교 같은 구성원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고정된 집단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안정감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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