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좋아하는 마음을 더하고 더해서
    아하 꾸러미 2022. 5. 17. 13:32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내 취향의 물건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작은 즐거움을 삶에 선물하는 것 같다. 이렇게 쌓은 마음은 하나의 취향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좋아하는 것만 쏙쏙 고르게 하는 수집가가 되게도 한다. 그냥 좋아했을 뿐인데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찐하게 좋아한 세 사람과 그들의 물건 이야기를 소개한다.🐑 written by 루비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문구


    나의 '빈티지 유리컵' 사랑을 얘기해 보자면, 그냥 좋아서 산다. 귀여운데 희소성 있고 일상생활에 쓸모까지 있다면야. 친구들은 같은 유리컵을 왜 이렇게 사느냐 묻지만, 그곳엔 내 마음을 휘어잡는 어떤 지점을 담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컵 수집가로 살다 보니, 규림 작가의 문구 덕후 책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저자는 학창 시절부터 문방구를 덕질했다며, 스스로를 '문구인'이라 칭한다. 저자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인 '문구인'이란 소개가 얼마나 참신했던지.(잠시 유리컵 수집인이라고 내 프로필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튼, 문구>는 첫 장을 펼치자마자 기분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월급의 반 이상을 문구 구입에 탕진한 적도 있고, 문구점에서 하루를 보낸 적도 많다고. 그래서 오래된 문구점에 들어가 뭐라도 사온다며 문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문구를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문구 소비는 실용과는 멀다는 걸 알았다는 지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문구란 노트랑 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문구의 쓸모란 쓰면 그 뿐이니까. 하지만 실용성만 내세우기엔 하늘 아래 같은 검정 펜이란 없다. '그렇다. 문구의 세상은 결코 실용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라는 그의 고백은 좋아하는 것 앞에서도 '이유'를 붙여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또 다른 위로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마음에 좋아함을 더하면, 얼마나 반짝이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를 깊게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쁨이 아닐까. 읽는 내내 나도 자꾸 뭔가를 쓰고 그리고 싶어 져 견딜 수 없었다.

    "만년필에는 ‘길들인다’는 표현을 쓴다. 내가 만년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 표현을 중학생 시절 처음 만년필을 선물 받았을 때 들었는데,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오랜 시간 써서 나에게 꼭 맞는 형태로 만드는 것.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일방적으로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맞춰나가는 상대로서의 필기구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 김규림, <아무튼, 문구> 중에서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오래된 영화를 보고 나면 습관처럼 이동진 작가의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꺼내보게 된다. 나의 감상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아서다. 때로는 에세이처럼 읽히고, 때로는 사랑 시 같은 문장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의 깊게 좋아하는 마음이란 조용히 따듯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파이아키아>는 이동진이 사랑한 영화의 물건들에 대한 거대한 수집 기록이며, 성수동에 있는 그의 개인 작업실 이름이기도 하다. 작업실을 지을 때 오래 고민하다가 신화를 워낙 좋아하던 탓에, 오디세우스(그의 이름은 어원적으로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를 품고 있다)의 마지막 여행지인 신화 속 지명 '파이아키아'를 붙였다고.

    '파이아키아'엔 그가 일평생 수집한, 영화와 관련된 2만 권의 책, 1만 장의 음반, 5천 장의 DVD, 5천여 점의 수집품이 진열되어 있다. 책을 펼치면 거대한 그의 작업실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동경하고 탐닉해온 대상들에 대해 읽고 있으면, 물건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내게 온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이유는 김흥구 사진작가의 사진 덕분이었다.(철물점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망치가 이렇게 혼자 빛나도 되는 건지.) 더불어 '파이아키아'를 설계한 봉일범 교수와의 대담도 담고 있어, 누군가의 좋아하는 마음이란 이토록 입체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연결된 수많은 이야기가 아닐까.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이란 어쩌면 더 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펼쳐 볼 책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든든한 느낌은 덤이다.

    "파이아키아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귀가 적힌 나무판이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이 모든 책과 영화와 음반과 수집품들을 둘러본다. 그 하나하나마다 서린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여기엔 모두 4만 개가량의 물품들이 있으니, 파이아키아엔 4만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오랜 세월 얽혀가며 여기까지 뻗어온 나의 이야기가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이동진, <파이아키아> 중에서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언젠가 친구가 나뭇잎의 뒷면을 햇빛에 비춰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좋아한다는 건 뒷면도 괜찮다고 해주는 마음 같아.'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대체 뒷면도 괜찮다고 해주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하고. 상상도 잘 되지 않는 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책 수선가라는 직업이 있다. 누군가가 좋아한 손때 묻은 책을 수리해주는 사람이라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수선가에게 온 어떤 책은 표지가 바랬고, 또 어떤 책은 본문이 찢어져버렸지만, 책 수선가의 손에 들어가면 단정한 얼굴로 재탄생한다. 무엇이든 쉽게 사고파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새것을 사지 않고 낡고 손때 묻은 책을 굳이 고쳐 읽는다. 그리고 책 수선가는 그런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의 기억이 담긴 책을 만지고 수선한다. 뒤틀리고 망가진 것들 사이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꼭 책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책에 담긴 누군가의 기억과 수선된 책의 새로운 얼굴을 기록한다. 어떤 방향으로 수선하고 싶은지 충분히 의뢰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 속에 담긴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러 상처들이 있어도, 그 상처들은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고유한 서사는 아름답다는 걸 수선되는 책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의뢰인들은 수선된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친구가 돌아온 것 같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선, 마음이 징- 울리기도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에 몰입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매일 더 키우며 기쁨을 찾는다. 그런데 책 뒤편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에서 정말 좋아하게 된다는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뒷면도 괜찮다고 해주는 마음, 부서지고 무너져도 괜찮다는 그 넉넉한 마음. 종이 위를 가르는 저자의 조심스러운 손길을 떠올리며 읽어 내리는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유리 구두》의 파손들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종이가 갈색으로 변할 만큼 긴 세월 동안 잊지 않고 간직해온 사랑, 책등이 떨어져나가고 곳곳이 찢길 만큼 자주 펼쳐보았던 사랑, 곳곳에 이런저런 낙서를 했을 만큼 늘 가까이에 두었던 사랑, 그리고 아마도 좋아하는 과자와 함께여서 더 즐거운 독서 시간이 되었을, 그런 사랑들 말이다." --- 재영 책수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중에서


    /

    ⓒClem Onojeghuo

    📚 소개된 책 더 알아보기(클릭하면 이동해요)


    - 아무튼, 문구
    - 파이아키아
    -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Copyright 2022. 아하레터 All rights reserved. / 본 사이트에 게재된 콘텐츠는 (주)위즈덤하우스에서 관리하고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입니다. 사전 동의 없는 무단 재배포, 재편집, 도용 및 사용을 금합니다. 좋았던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면 링크를 활용해 주세요.
    aha.contents@wisdomhouse.co.kr

     

     

     

    댓글

all rights reserved by wisdomhouse 📩 aha.contents@wisdomhou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