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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sns를 탈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온라인 세계란 모두에게 쉽게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까지 랜덤처럼 찾아와 자극점을 높이기 때문이다. 짠 음식을 많이 먹어 분명 몸이 불어 있는데도, 물을 마시지 않고 계속해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느낌. 무거워진 몸은 평소보다 쉽게 피로함을 느낀다.
사실 해결책을 알고 있다. 멈추면 된다. 쉽게 휘발되는 즐거움 근처에서 나와, 속도가 느리지만 깊은 기쁨이 있는 이야기에 나를 노출하는 것이다. 산책하며 변한 계절을 느끼고,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단 핑계로 보지 못한 영화를 보고, 이전에 구입해 두었지만 읽지 못한 책을 읽는 것 말이다. 가을은 유난히 걸음을 멈추기 좋은 계절, 그 핑계를 삼아 멈춰보고 싶다. 조용하고 잔잔한,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책 3권을 소개한다. 🐑 written by 루비
읽는 생활
문득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나서야 지난 나를 이해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나조차도 나를 몰랐는데, 그 시절 나와 비슷한 순간에 놓인 저자의 문장을 보며 ‘맞아, 내 마음도 그랬어’ 생각하게 된다. 그제야 이해되지 않았던 조각이 맞아떨어지며 지각한 마음이 소화되곤 한다.
유난히 <읽는 생활>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아하레터를 만드는 나의 삶과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책을 보며 쉬는 저자의 읽는 생활이 닮아 있어서일지 모르겠다. 먹고사는 우리의 고유한 세계는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과정에서 책과 맞닿은 이들을 자주 만난다.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독자에게 전하는 사람, 가까운 동네서점들까지. 더불어 책과 연결된 감정을 만난다. 좋아했던 책방이 사라지며 절망하게 되는 마음, 같은 책을 읽는 누군가와 이어진 것 같은 마음. <읽는 생활> 속엔 책과 연결된 수많은 다정한 기쁨들이 들어있다.
매일 빠르게 세상은 변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책 속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좋아하는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서점만 가면 욕심이 나서 책을 잔뜩 사놓고 집에 쌓아만 두고, 그리고 다시 그중에서 책을 골라 읽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걸, 그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걸, <읽는 생활>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어떤 책은 마음을 잡아주는 돌이 되어준다. 휘몰아치던 생각들을 그 순간 돌아다니지 않게 하는 책이 있다. 평소엔 낯선 매일매일을 새로 마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간 마음속에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어떤 고민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는지 알아채기가 어렵다. 책을 펼쳐서 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제야 내가 보인다. 어떤 문장은 지금껏 결정하지 못했던 나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한다.”
- 읽는 생활, p.39 중에서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같은 영화를 보았는데도 서로 다른 지점을 인상적으로 이야기하고, 같은 장면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이상하게 재밌다. 좋았다고 생각된 영화는 다시 영화관을 찾아가 몇 번이고 본다. 그럼 신기하게도 매번 다른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한 번에 이해되었다. 세상 모든 영화는 언제나 두 번 시작되니까. 한 번은 극장에서, 두 번은 극장을 나와 내 속에서 곱씹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더 풍성해지고, 그 시간을 지나야만 온전한 내 마음이 된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20년간 평론을 담은 책이다. 1999년 개봉한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그에게 찾아온 영화를 매만진 책이다. 한 사람의 20년이 담긴 시간도 대단하지만, 이 책은 물성에서 압도된다. 두꺼운 책임에도 사철 제본으로 단단하게 매여있어 종이의 결이 한눈에 보이는데, 집 어느 곳에 두어도 오브제 같은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요즘은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책을 펼쳐본다. 영화 평론이지만 한 편의 사랑시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에세이 같기도 한 이동진 평론가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영화가 다시 내 속에서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것 같다. 이전에 보지 못한 어떤 부분을 발견한 순간을 마주하면, 다시금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인물들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격랑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종결법은 그 자체로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 각자의 마음에서 영화가 다시 시작되게 하려는 제언처럼 여겨진다. 단 하나의 정답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영화는 이렇다.”
-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p.155 중에서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작년 팀 아하레터는 경복궁 근처의 고즈넉한 한옥 에어비앤비로 워크숍을 갔다. 멋진 공간이었으나 위장이 따끔따끔해서 좋은 날을 망칠까 고민이 되었는데, 에어비앤비에서 준비한 맥파이앤타이거의 웰컴 쑥차를 마시고 미묘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것은 속을 달랠 따스한 차 한 모금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그날, 나는 따스하고 포근한 찻자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은 동아시아의 차를 소개하는 맥파이앤타이거의 책으로, 처음 차를 시작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차를 즐길 수 있는 방식과 태도를 알려준다. 차는 커피만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것, 값비싼 도구가 있어야 하는 문화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차는 그날의 내 마음과 상황에 맞추어 함께하면 더 좋은 존재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는 햇살, 바람 같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무실에 구비된 티백으로 만들어진 차는 유용하지만, 나만의 다기를 활용한 찻자리는 바쁜 삶 속에서도 마음에 여유와 충분한 공간을 선물한다. 한 모금의 차가 나를 풍성하고 향긋한 차의 세계로 이끌었듯, 다른 이들에게도 운명같이 마음이 활짝 열리는 차의 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처음 차의 세계 문을 여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차를 꺼내 우리고 잔에 따르고 마시는 모든 순간은,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는 따스한 시간이니까.
차를 즐길 수 있는 모든 시간들이 나를 알아차리는 일과 닿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이 순간을 살짝 눈치채 보는 거예요. 찻잔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 은은한 차의 향미, 숨결에 느껴지는 차향, 가만히 앉아 차를 즐기는 공간까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오늘의 나는 어떤지. 갖춰지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p.26 중에서 / 휴머니스트📚 소개된 책 더 알아보기(클릭하면 이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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