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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가 영감을 내것으로 풀어내는 방법아하 스토리 2022. 1. 19. 11:33
영감이란 녀석이 매끈히 잘 다듬어져서 예쁜 그릇에 담긴 다음 먹기 좋게 우리 앞에 놓일 확률은 없습니다. 대신 ‘이게 뭐지? 이거 먹는 건가? 아닌가? 이걸 여기 놓으면 저거랑 아 귀가 맞나?’라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참 애매한 형태로 여러분을 스쳐 지나갈 겁니다.
묻은 흙을 털어내고 모난 부분을 깎아도 보고, 때론 이로 깨물고 직접 혀를 대봐야 대충 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일테죠. 그러니 이 불완전한 영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몸을 써야 합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처럼 말이죠. 기획자로서 영감을 '내 것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STEP 1. 영감을 풀다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저도 조금씩 저만의 방식들을 만들어가게 되더군요. 쓸 만한 아이디어인 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선별된 아이디어를 단계적으로 구체 화해본 다음, 타깃이 되는 사용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 민하는 방식들 말입니다. (이건 그저 저의 스타일을 소개하는 것 인 만큼 여러분은 또 여러분만의 방식을 찾아야 하겠죠?)
STEP 2. 생각의 숙성
영감을 풀어가는 저만의 방식 중 하나는 생각의 ‘숙성’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입니다. 아마 바로 반문부터 하는 사람들 이 있겠네요. ‘아니, 일하며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는 기획자가 몇이나 된다고!’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숙성이란 생각을 머릿속에만 가둔 채 질질 끌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되면 이를 적당한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노출시키라는 얘기죠.
저는 떠오른 생각을 메모한 뒤 그 메모와 자주 마주하는 방식을 즐겨 씁니다. 그래서 메모를 노트에 쓰고 덮어두기보다 는 PC나 핸드폰 바탕화면에 고정시켜 놓는 걸 더 선호해요. 내가 떠올린 생각을 나 자신에게 먼저 보여주고 그 반응을 자주 체크하는 거죠.
이때는 나름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요, 우선 머릿속에 생각한 것들을 찬찬히 텍스트로 풀어써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글로 자유롭게 스토리를 만들어본 다음 몇 가지 주요 내용을 뽑아 정리하고, 이를 다시 키워드로 만들어 분류해 보죠.
STEP 3. 생각 가공
그런 다음 본격적인 가공을 시작합니다. 선택한 키워드에 맞는 다양한 이미지나 비주얼 자료를 골라 마치 잡지 표지처럼 만들어놓거든요. 내가 글로 쓴 이야기 나 키워드가 실제 모습으로 구현된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겁니다. 비단 이미지뿐 아니라 음악, 영 화, 책, 음식, 장소, 심지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번 가정해 보죠. 그 브랜딩 콘셉트는 ‘피크닉’이라고 해두고요. 그런데 ‘피크닉’이라는 단어만 머리에 담아둔 채 고민만 반복한다면 사실 큰 발전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나도 모르 는 사이에 피크닉에 관한 고정관념들이 굳어버릴지도 몰라 요. 그러니 떠올리는 데 머무르지 말고 직접 하나씩 풀어내야 합니다.
우선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나열해 보는 걸로 출발하는 거예요. 피크닉에 얽힌 일화도 좋고 소풍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좋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확장될 수 있을 만한 소재들을 따로 추려 주요한 키워드로 묶는 겁니다. #피크닉의 필수 아이템은 뭘까? #사귄지 한 달 된 커플이 피크닉을 간다면?처럼요.
그리고 이제 이 키워드별로 연관되는 이미지를 계속 수집하고 정리해 보세요.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자주 노출시키는 실험을 해보는 거죠.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 대신 차분한 모노톤의 이미지 위에 피크닉이란 단어를 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웹 사이트 이름이 피크닉이라면 어떤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곳일지, 내 생각을 하나씩 정교하 게 디자인해 보면 텍스트에서 출발한 심상이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STEP 4. 반응 수집
저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괴롭힙니다. 정말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주로 제 업무와 동떨어진 다른 일을 하는 동료나 회사 친구들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라야 솔직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때는 질문 자체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저 ‘이건 어때요? 둘 중에 뭐가 나아요?’ 식의 질문으로는 반응을 얻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그보다는 상대방도 함께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질 문을 던지는 것이 좋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제가 ‘만약에~’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질문을 해대는 통에 상대방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괴로워하며 심각한 고민에 같이 빠져줍니다(?). 그리고 나름 본인의 취향과 상상력을 조합해 대답해 주죠. 이때는 대답 자체뿐 아니라 그 사람이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을 관찰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왜 그런 결론과 선택에 도달하게 됐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니까요.
STEP 5. 온몸 투구
저는 한때 문서를 칼같이 잘 쓰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디자이너, 개발자들이 쓰는 툴을 현란하게 다루거나 새로운 작업 방식이 세상에 나 올 때마다 휙휙 갈아타는 사람들도 선망의 대상이었죠. 솔직히 그들은 저보다 저만치 앞서 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연차가 쌓이다 보니 이는 어디까지나 작업을 도와주는 수단일 뿐 기획이라는 본질을 흔들어놓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빈 종이에 볼펜으로 슥슥 그리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돌이켜보면 저도 과거에는 ‘포맷병’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왠지 기획서를 쓰면서도 ‘뭔가 이런 거 하나는 들어가 줘야 상차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죠. '초안에 대한 압박감’도 심했습니다. 킥오프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 한번 잘 꿰어보려 너무 앞서간 자료를 준비해 들어간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공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인지 자꾸 내 아이디어를 지키고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었죠.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초안은 걸레다”라는 유명 작가님의 말을 되새기며 ‘안 되면 걸레로 쓰지 뭐!’라는 마인드로 초안을 만듭니다. (중요한 건 디벨롭이고 완성이니까요!)
대신 기획의 단계마다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고 도구일지를 고민합니다. 짧게 정리한 워드 문서 한 장이 될 수 도 있고 레퍼런스로 찾은 사진 한 장일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왜곡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어떤 케이블을 사용할지 정하는 것이, PPT 수십 장을 만들고 혼자 뿌듯해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거든요.
출처
본 내용은 김도영 저자의 <기획자의 독서> 2장 중, '떠올리다<풀어내다' 에서 발췌 및 재편집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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