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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해? by 도대체
    아하 에세이 2021. 9. 3. 09:33

     

    이 집에 이사 온 지 어느덧 반년도 더 지났습니다. 이사할 즈음 저는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하는 다른 일들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이사에 크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삿짐만 다 들여놓은 후에, 나머지는 살면서 손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고는 반년이 후딱 지나버렸습니다.

     

    짐작들 하셨겠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집은 이삿짐만 다 들여놓은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도무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면 저 일이 기다리고 있는 날들의 연속이죠.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이런저런 정리를 해왔지만 제가 바라는 그림과는 거리가 영 멀기만 합니다. 일단 거실 벽 한쪽에 둔 커다란 수납장부터 문제입니다. 이삿날엔 그 자리에 놓으면 딱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수납장인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자리에 두고 싶어졌습니다. 한 번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니 수납장을 볼 때마다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Ryu Orn

    책장도 문제입니다. 먼저 살던 집의 한쪽 벽에 딱 맞게 들어가던 책장 세 개가, 이 집 벽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이렇게 놓는 게 최선이라면서 자로 놓고 가셨지만, 아무리 보아도 일렬로 나란히 있든, 하나를 치우고 두 개만 놓든 해야 맞는 것 같았습니다. 자주 꺼내 쓰는 잡동사니들을 담은 서랍장의 위치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거실에 있는 큰 수납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이것을 그 자리에 놓을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거실이 훨씬 넓어 보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볼 때마다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수납장도 책장도 제 힘으로는 옮길 수 없는 것들이어서, ‘언제 날을 잡아서 사람을 불러 옮겨야 하는데같은 생각만 할 뿐이었답니다. 인테리어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고 생각하니 다른 자잘한 정리들도 하고 싶지 않아져서, 집 안은 도무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어수선하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sns에 올라오는 다른 이들의 집 풍경은 어쩜 그렇게 다 깔끔히 정돈되어 있는 걸까요? 물론 그런 분들이 자신 있게 사진을 올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두 분이 아닌걸요. 본인들은 고양이와 개, 식물이나 음식 사진 같은 것을 찍어 올렸을 뿐이겠지만, 저는 그 사진 속의 깔끔한 배경들을 보며 그렇게 정돈하지 못하는 저를 질책하곤 합니다. 이사하고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은 분이 오늘로 집 정리를 마쳤다고 올린 것을 보면서는 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벌써? 벌써 정리가 끝났다고? 나는 이사한 지 반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집이 이 지경인데!’ 큰 정돈이 덜 되었대도 집을 오밀조밀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센스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저는 그런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급한 대로 사서 식탁에 깔아놓은 식탁보의 무늬조차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남들은 잘만 하는 일들을 저는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집 안 정리가 도무지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자니 친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살기엔 어때. 편해?”

    .”

    편하면 됐지. 대관절 뭣이 중헌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통화를 계속하며 집 안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집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는 거실에 있는 그 커다란 수납장에 등을 기대고 TV를 보는 것이 편합니다. 벽 한쪽에 다 들어가지 않아 자로 놓고 쓰는 책장도 저에게 딱히 불편을 끼치진 않습니다. 생긴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식탁보는 방수가 되어서 음식을 흘려도 슥 닦으면 그만이라, 뭘 흘리든 짜증 내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편하냐고 물으면 편하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편합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도 이불 위에 대자로 누워 아이고 마감 하나 또 끝났다! 아이고 허리야 에구구구 삭신이야!” 중얼거리며 푹 쉴 예정입니다.

     

    보기에 깔끔한가/아닌가’, ‘예쁜가/아닌가가 아니라 내가 편한가/아닌가란 눈으로 집을 둘러보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예쁜 소품을 들이는 것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정하고 예쁘게 살 수 있다면야 당연히 좋을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부터 들거나 자괴감을 느끼는 일은 덜할 것 같아요. 그러니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 굳이 괴로운 마음까지 들려 한다면, 저는 이제 저에게 이렇게 물어볼 것 같습니다.

     

    편해? 편하면 됐지. 뭣이 중헌디.”

     

    아이고 삭신이야. 저는 이제 쉬러 갑니다.

     

     

     

    /

     

    🎈아하레터에서 도대체 작가의 <나로 사느라 고생이 많아요> 연재를 시작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분명한 행복을 찾아내는 도대체 작가님의 이야기는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번씩 찾아올게요.

     

    글. 도대체

    한량 기질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분의 중간이 되지 못하고 ‘게으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량’이 되었다. 개 ‘태수’, 고양이 ‘꼬맹이’ ‘장군이’의 반려인간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점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살려 작은 웃음에 집중하는 글과 그림을 생산하고 있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그럴수록 산책』 등을 출간했다.

     

    지은 책 중에서 추천해요!

    『그럴수록 산책』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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