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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만의 속도로 만드는 일상 루틴(feat. 컬러루틴키트)
    아하 스토리 2021. 5. 17. 17:43

    *컬러루틴키트

     

     

     

    ‘운동은 정말 루틴으로 만들어지지가 않아’

    나는 운동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평소 체력도 좋은 편이 아니고, 선호하는 운동도 없다. 운동을 하면 늘 빨리 지치고, 새롭게 익히는 일도 서투른 편이다. 초보자라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해왔다.

    운동을 루틴으로 만들고 싶어 시작한 것이 걷기였다. 나는 꾸준히 걸었다. 걷기는 내 속도에 맞는 루틴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게 맞는 정도로 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즐길 수도 있는 운동이었다. 무엇보다 걸으면 마음이 풀렸다. 평소에 잔걱정이 많은 나는 몸이 쉽게 경직되고 굳었다. 걷고 나면, 나는 늘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음도 편해졌다. 길 위에 내 고민들을 조금씩 버리고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3년을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최근, 걷기로도 마음의 무거움이 잘 덜어지지 않는 날이 있었다. 문득 ‘숨차게 한 번 뛰어보면 좀 나아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합정에서 상수까지 약 2km의 한강공원 구간을 달렸다. 아주 천천히 달리긴 했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를 했다. 겉으로는 별 일 아닌 척 태연하게 굴었지만, 사실 조금 놀랐고, 많이 뿌듯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 느껴보는 심장의 요동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해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좋은걸, 나는 그 동안 왜 달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나는 체력의 한계를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체력이 약하고, 운동을 못하니까 몇 km의 완주는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중간에 포기할거면 시작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달리기에 대해, 체력에 대해, 운동에 대해 스스로 이만큼이나 겁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걷기를 시작한 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2주에 한 번을 걸었고, 그 다음은 친구와 함께 걸어보자 제안했고, 재미를 붙여 나만의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기꺼이 걸었다. 내 속도를 알아가며 천천히 조금씩 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걷기는 나의 운동루틴이 되었다.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즐거움이 되었을 때 루틴은 내 일상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걷기가 루틴으로 되기까지 도구의 도움도 컸다. 걷기를 할 때마다 컬러루틴키트로 꾸준히 기록을 해왔다. ‘걷기’는 일주일의 일상 안에서 다양한 컬러로 기록되어 왔다. 때로는 나를 돕는 루틴으로, 때로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내 일상 안에 걷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든든하게 했다. 힘든 일상이 찾아와도 나를 위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를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 컬러루틴키트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라이프컬러링에서 만든 자아발견 도구다. 일주일의 시간을 컬러블록으로 나누어 그려보고, 나의 일상 루틴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일주일을 컬러로 구분하고, 6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보면, 내가 어떤 시간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다. 나의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며 나를 돌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달리기도 컬러루틴에 추가해 그리며, 나의 일상 루틴을 관찰하고 있다. 달리기를 한 날의 기분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달리기가 주는 일상의 활력과 리듬을 기록한다.




    걷기가 얼마나 나를 돕고 있는지를 상기하며 걸었다. 존중의 걷기였다. 나를 존중하며 걸었던 시간은 결국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달리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몇 분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는 나를 보며 ‘역시 내 체력은 엉망이야’하고 다시는 시도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을 존중하는 마음, 그 마음이 내게 남았다. 그 믿음이 나를 기다려주게 만든다. 내가 원한다면 멈추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 두렵지 않고, 천천히 걷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인내심 있는 예열 덕분에 나는 달릴 수 있었다.

    일상의 많은 일들이 달리기와 비슷하다. 스스로 기다려주어야 하는 일들, 내 속도를 알아차려야하는 일들이 그렇다. 효율적인 루틴을 만드는 일, 나다운 일상을 만드는 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모두 그렇다. 나에게도 그런 욕심이 있다. 멋지고 세련되게 한 번에 좋은 루틴을 만들고 싶은 욕심. 왕도가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럴 때 달리기를 생각한다. 예열도, 실험도,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것, 모두가 달리기부터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재작년부터 루틴을 통해 마음을 돌보는 ‘라이프컬러링’을 운영 중이다. 일이 일이다보니, 사람들에게 좋은 루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방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달리기가 내게 말했듯, 방법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의 내 속도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이다. 속도와 마음을 존중해야 내 것이 되고, 그것이 건강한 루틴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 내가 걷고 달리며 배운 것들이다. 

     

     

    글. 유보라

    나다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화와 질문, 도구를 통해 나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자아발견 문화를 제안하는 라이프컬러링을 운영하며, 책 <나의 일주일과 대화합니다>를 썼습니다.

     

    🟣🔵🟡🟠라이프컬러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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