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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면 페이지 속으로 빠져들지도 몰라
    아하 꾸러미 2023. 2. 13. 15:33


    유난히 지치는 날엔 만화를 꺼내 읽는다. 만화 속 세상을 따라 나의 힘들었던 하루를 잠시 잊는다. 주인공의 슬픔을 따라 ‘나도 그런 적 있는데’ 위로받고, 그의 기쁨에 따라 ‘나도 잘 살아보고 싶어’ 생각하면서. 그러다 보면 무거웠던 하루가 털어져 나가는 기분이 든달까. 힘든 하루의 끝엔 화려한 한 문장의 글보다 빈 만화 페이지가 더 큰 울림을 주는 듯 하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탄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세 권의 만화를 소개한다. 🐑 written by 루비

    구백구 상담소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 월요일 아침부터 업무 지시 연락이 왔을 때, 그걸 출근 지하철에서 먼저 읽었을 때 유독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에 간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하는 상상, 싫은 사람에게 궂은 장난을 거는 상상, 로또에 당첨되어 쿨하게 공항으로 떠나는 상상을 하면서.

    조금은 부끄럽게 생각되는 이러한 고민도 받아주는 곳이 있다. 바로 옥탑방 909호의 구백구 상담소. 어떤 고민이든 상담해 준다는 말이 믿음직스럽다. 보라색 모자를 쓰는 상담가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질문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어요.” “여행 작가가 되고 싶은데 굶어 죽을까 봐 걱정돼요.” “어떻게 해야 시간이 천천히 갈까요?” 그들의 고민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오늘 내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했던 고민과 어딘가 닮아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도 모르고, 또 정답도 없는 의문들. 하지만 이런 답답한 마음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각자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구백구 상담소에 오고서 각자의 대답을 발견하고 떠나는 사람들처럼.

    매일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 투성이지만, 믿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또 어떻게든 살 게 된다. 어설픈 위로라도 내 마음을 들어주고 알아준 사람이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터질 것 같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삶에서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시간을 버텨내며 잔잔하게 헤엄치며 지나간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들어주면서.

    담요

    애착 담요가 있다. 7살 즈음인가 어느 행사에서 공짜로 받아온 얇은 담요인데, 멋진 빈티지 자동차가 프린트되어 있다. 잦은 이사에도 살아남은 담요는 20년도 훌쩍 넘게 나의 침실을 지키고 있다. 이 오래된 물건이 좋은 것은 나와 오래 함께 있었기도 하지만, 담요를 보면 행복했던 유년이 떠올라 괜히 뭉클해진다.

    <담요>는 크레이그라는 한 소년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엄격한 기독주의 집안, 부모의 방관,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인해 소년은 어려서부터 포기와 상처와 낙심을 배운다. 동생을 골방에 넣는 아버지에게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또래 아들 사이에서의 불안함 등이 한 데 섞여 소년은 청년이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 기대 없음, 고통 등을 배운다. 회색과 닮은 삶이지만 성경캠프에서 만난 레이나를 통해 그의 삶은 새로운 장으로 넘어간다. 매번 회피하기만 했던 크레이그는 레이나를 통해 사랑도, 삶도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데, 그 사이에 담요가 등장한다. 레이나가 크레이그를 위해 조각보를 모아 만든 담요. 어떤 시절엔 사랑이고, 또 어떤 시절엔 추억이 되는 물건. 크레이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담요를 자주 꺼내 본다.

    읽으며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교훈적인 메시지보다는 그저 누군가의 흘러간 인생을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담요>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다 보면 그가 겪어온 어떤 장면이 내 삶에도 있었던 것 같단 체험을 하게 된달까. 내가 나의 애착 담요를 보았을 때 밀려오는 삶에 대한 어떤 감동이 <담요> 책을 읽으며 들었다.

    고양이와 수다

    친한 언니는 가끔 고양이와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피아노 위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참 궁금하면서도, 한 편으론 말하지 않아도 고양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한 집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시간이 참 고맙고 귀해서, 자신은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귀여운 상상을 한다고 말이다.

    <고양이와의 수다>는 언니의 상상이 펼쳐진 책같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인 홍당무와 고양이인 야옹이가 친구가 되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둘은 대화를 하다 보니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들만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힘든 날엔 캐묻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고, 작은 귀여움에도 함께 배꼽 잡고 깔깔 웃고, 서로에게 최선이 아닌 것 같은 부분에는 조심스럽지만 정확히 이야기해 준다. 정말 정말 친한 친구처럼.

    서로에게 다정한 품을 내어주는 하나의 존재만 있다면, 우리는 그 온기를 힘 삼아 또 살아가게 된다. 그 힘은 특별하거나 유별난 거대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곁에 있어주며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 내가 가진 다정함을 떼어 상대에게 주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홍당무와 야옹이를 보고 있으면, 깃털처럼 나누는 아무 말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나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는 것 같아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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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백구 상담소
    - 담요
    - 고양이와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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