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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퇴근법 by. 김민철아하 에세이 2022. 10. 24. 15:21
“야근이 많겠어요.”
“6시면 보통 퇴근해요.”
이 대화를 도대체 몇 년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이 대화는 토씨 하나 안 변하고 영원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 대답에 놀라는 상대의 반응도 유구한 전통이다. 놀랄 만하다. 나도 신입사원 때 6시 정각에 퇴근하는 선배들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진짜 퇴근하신다고요? 신입사원인 저도 6시 퇴근이라고요? 이렇게 퇴근해버리면 내일 아침 회의는 어쩌나요? 광고회사는 밤새서 아이디어 내는 곳 아닌가요? 매일 퇴근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며 질문을 100개씩 삼켰다. 그렇게 질문으로 가득 찬 시절을 지나, 나도 이제 6시 퇴근을 타협 불가능한 우리 팀 제1원칙으로 세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 팀으로 발령 난 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말한다.
“팀장님, 일의 밀도가… 너무 높아요.”
“바쁘다, 바쁘다, 예전 팀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식으로 바빠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매 순간 모두가 한마음으로 6시 퇴근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팀이니까 낯설 만하다. 지각변동에 익숙해지려면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이런 대화까지 오간다.
“어제 친구랑 통화하다가,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것 같다고 그랬더니 묻더라고요. ‘그럼 이번 주말에도 회사 나가야겠네?’ 그래서 ‘아니? 주말엔 출근 안 하는데?’ 대답했더니 다시 묻더라고요. ‘그럼 매일 야근하고 있는 거야?’ 그러길래 ‘아니? 퇴근은 6시면 해’ 대답을 하고 났더니 걔는 어이없어하고, 저는 바쁜 거 진짜 맞는데 싶어서 막 억울하고.”
6시에 퇴근을 하지만 웬만해선 평일 약속을 잡지 않는 이유다. 대부분 6시가 되면 하루치 기운을 모두 소진해버리니까. 내가 나이가 많아서, 체력이 달려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신입사원도 내게 말했으니까.
“팀장님, 6시가 되면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퇴근하면 무슨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아요.”
상태가 이 지경인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근무시간에 좀 여유롭게, 차근차근 기운을 챙겨가면서 일하다 야근을 하는 건 어떨까? 라고 묻는다면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팀장님, 이상한 생각할 시간에 일이라도 하나 더 하세요. 얼른요.”
우리는 매일 6시를 데드라인으로 설정하고, 하루 곳곳에 일을 잘게 쪼개 밀어 넣는다.. 어떤 날에는 회의가 7~8개씩 잡히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10분짜리 회의가 촘촘히 줄을 선다. 저녁 미팅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케줄표를 꼼꼼히 분석하며 20분이라도 틈이 나는지 체크를 해 일과 중으로 미팅을 다시 잡고, 다시 일을 배열하고 실행하고 정리하고 보내고 한숨 한번 쉬고 또 바로 다음 일로 뛰어든다. 10분씩 밀린 회의가, 늦어진 판단이, 안일한 피드백이 야근이 되어 돌아오는 일의 나비효과를 모두 아는 까닭이다. 모두가 6시를 불문율로 마음에 새기고,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며 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회사의 사훈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는 문구는 그런 우리 팀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내 책상에도 붙여놓았다).
日職集愛 可高拾多(일직집애 가고십다)
하루 업무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얻는 것도 많다
물론 그렇게 일을 해도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는 날들이 있다. 자정이 넘어 몇 시간 후 다시 만나자며 지친 미소로 헤어지는 날들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출근하기도 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카톡으로 밤늦게까지 일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그 경우에도 일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의 야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나의 일이고, 내 일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어야만 하니까.
6시 퇴근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일이 있는데도 6시가 되었다고 무작정 퇴근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무책임한 거다. 6시에 퇴근해야 하니까 주어진 일을 대충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건 무능력한 거다. 무책임과 무능력 없이 6시에 퇴근을 하겠다는 건, 매 순간 촘촘히 날을 세우며 일하겠다는 다짐이자 태도다. 매 순간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겠다는 태도, 그리하여 사생활의 영역에 일을 침범시키지 않겠다는 태도. 내 생활의 주도권을 내가 갖겠다는 선언. 우리가 6시 퇴근을 회사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삶이 너무 내 것이어서. 내가 이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되어서. 일이 너무 뻔뻔하게 이 삶의 주인인 양 엉덩이를 들이미는 상황을 너무 많이 겪어서.
“요즘 일이 많아서 계속 야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불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유능함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야근’이라는 말로 대신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야근처럼 손쉬운 성취감은 또 없으니까.
“나도 야근 안 하고 싶지. 근데 어쩔 수가 없어.”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할 때 주변은 다들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란 걸. 조금 안이한 논의, 조금 여유로운 일 처리, 남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조금 늦어진 결정, 그 조금이 모여서 오늘의 야근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음’은 내게 붙어 있는 딱지가 될 수도 있다. 알지 않는가? 야근도 맨날 하는 사람이 한다. 일이 많은 사람이 매일 야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직장인의 3대 즐거움은 월급, 점심시간, 그리고 정시퇴근이다. 앞의 둘은 회사가 챙겨주지만, 정시퇴근을 챙겨주는 회사란 없다. 정시퇴근은 내가, 아니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쟁취해야 한다. 팀 분위기까지 내가 만드는 게 역부족이라면, 내 태도라도 모두에게 주지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저는 제 일 다 하고, 6시엔 떠나겠습니다, 라는 태도를 산뜻하게, 단호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은 내가 내 삶을 주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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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철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저자. 주중에는 광고회사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주말에는 글을 쓰며 작가로 활동 중이다. 18년간 SK텔레콤, 네이버, LG전자, 일룸, SK에코플랜트 등의 광고 캠페인을 담당했으며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하루의 취향』,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등을 썼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회사에서 성장하기'를 주제로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가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6회, 6월~12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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