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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없는 내향적인 직업인의 강렬한 무기 by. 이진선아하 에세이 2022. 8. 4. 15:17
존재감 없던 내가
글 하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팀 매니저가 다급히 달려왔다.
“진선 씨, 이게 무슨 일이야? 글을 쓰고 있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이사님이 전화를 하셨어. 진선 씨가 글을 쓰고 있는 게 맞냐고.”
정식으로 브런치를 시작한 게 2019년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만 10년 넘게 하다가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마침내 글을 쓰게 됐다.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했는데 그중 <실력은 연차와 비례하지 않는다>가 브런치 추천글로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이 글을 당시에 다녔던 회사의 이사님이 우연히 SNS에서 본 것이다.
이사님은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정 안 되면 사내 강연이라도 부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찾다가 브런치 프로필에 연결해 둔 내 포트폴리오를 보게 되었는데, 우리 회사 프로젝트들이 있어 그제야 회사 직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팀 매니저에게 전화해 이 글을 쓴 사람이 우리 회사에 다니는 그 디자이너가 맞냐며 질문 세례를 한 이유다. 하루 만에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 전 직원들에게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니저도 나도 당황했다.
다음 날 대표님이 따로 불러 점심을 사주셨다. 사수가 없어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책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며 내 글에 공감한다고 말씀하셨다. 독자로서 글을 읽고 전해주시는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를 볼 때 겉보기에 화려한 포트폴리오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디자이너를 찾는 게 쉽지 않더군요.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런치에는 내 이름이 있다. 그렇지만 이사님은 이름을 보고도 절대 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재직 중인데 스카우트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4년이나 다녔는데 이제야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 알게 됐다는 대표님의 말 역시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서글픈 양면적인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 정도로 조직 안에서 존재감이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외향인의 가면을 쓰려던 내향인,
나답게 일하면서 성장할 수는 없을까
나는 극단의 내향인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 시끌벅적한 모임, 의미 없이 나누는 스몰토크를 어려워한다. 언제나 조용히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성향이기에 앞에 나서서 성과를 드러내고 어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몰랐다. 내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잘하는지. 한때는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말없이 조용한 사람은 자칫 과소평가당하고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온라인 글쓰기는 업계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나가던 직장 동료가 슬쩍 다가와 “팬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오래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가 상사에게서 내 글을 추천받았다며 연락하기도 했다. 처음 간 모임에서 이미 나를 아는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해서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건 내 삶에 없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스펙도 인맥도 없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고, 유명한 회사에 다닌 적이 없고, 네트워킹을 잘하지도 못한다. 단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만날 때마다 타고난 성향을 미워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 걸까 싶어 애써 외향인의 가면을 써보려고도 했다. 노력해서 못할 것도 없었지만 고통을 연료로 삼아야만 했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만 번 했다.
직업인의 성공 = 자립
자립을 위해 글보다 강렬한 무기는 없다
직업인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성공이란 곧 자립(自立)이라고.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자립의 사전적 의미다. 일을 하는 사람이 자립한다는 건 조직 안에서든 밖에서든 외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유통기한 없이 일하며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정규직, 프리 에이전트, 사업가. 일의 형태는 다양하다. 지속가능하게 일하려면 때에 따라 유연하게 업무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한 가지 형태로만 일하면서 자립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다.
소속 여부와 나이에 종속되지 않고 일하려면 끊임없이 실력을 업데이트하는 향상심과 업계 사람들이 나를 인지하는 존재감을 가져야 한다. 내향인인 나에게는 강렬한 향상심이 있었지만 존재감은 없었다. 온라인에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안테나를 세우는 것과 같다. 애써 다가가 증명하지 않아도 먼저 내게 찾아와 제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처럼 말주변이 없는 내향인이 자립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 호감을 품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일, 나의 가능성, 나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런 자산이 없는, 그렇지만 향상심을 가진 성실한 직업인에게 글보다 강렬한 무기는 없다.
글. 이진선
2007년,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해 웹과 앱, 프로모션 페이지 등을 디자인했다. 일하며 마주한 의문들을 열심히 수집하며 답을 찾았으나 번아웃으로 퇴사한 뒤, 프리랜서로 연 수익 1억 원을 거두며 10년 차 디자이너가 되었다. 2019년, 일터에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 관해 기록하기로 다짐하고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연재한 글로 ‘제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했다.
커뮤니티형 온라인 교육 스타트업 '한달어스'를 공동 창업해 2년 동안 운영했다. 지금은 브랜딩 디렉터, 작가, 디자이너, 자기발견 디렉터라는 직업을 병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디자인하는 사람, 실패보다 가능성을 보는 사람,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성장과 자립을 돕는 사람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가 있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직장인을 위한 퍼스널 브랜딩 글쓰기'를 주제로 이진선 작가의 에세이가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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