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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로북스 운영자 김경희가 전하는 ‘자영업자의 기쁨과 슬픔’아하 에세이 2023. 9. 10. 19:10
“어디 용한 점집 없어?”
친구에게 물었다. 10년 가까이 부천에서 운영하던 서점 ‘오키로북스’를 서울로 이전했다. 동시에 3년 만에 오프라인 서점을 오픈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 ‘감염병 위험으로 한두 달 잠시 오프라인 서점을 쉬어 가야지’ 했던 게 3년간 지속됐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온라인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없었다. 오히려 더 활발하게 온라인을 운영했다. 기존에 해오던 책 파는 일뿐만 아니라 책을 기반으로 하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기업들과 함께 일하면서 오키로북스는 조금씩 커나갔다.
그래서였을까? 서울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일에 조금도 겁이 나지 않았다. 지금껏 잘해왔으니 당연히 잘될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멋진 공간을 구했고, 그 안에 예쁜 가구들을 제작해서 넣었다. 정신없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책을 계산하고 즐겁고 재밌게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거라는 단꿈을 가진 채.
용한 점집을 찾기 시작한 건, 서점을 오픈하고 정확히 한 달 뒤였다. 기대와 달리 운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픈과 동시에 출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 비가 쏟아졌다. 비가 멈추고 해가 뜨면 뜨겁다 못해 고통스러운 더위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서점으로 오지 않았다.
처음엔 날씨를 탓했다. 시간이 지나서는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겁도 없이 서점을 오픈한 나의 오만함을 탓했다, 그리고 한 달이 됐을 때 오고 싶은 공간을 기획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탓했다.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했다. 그렇다고 퇴사할 수도(내가 사장이니까),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
‘목요일 저녁 8시 전화로 진행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7시 30분부터 자리를 잡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적고 있자니, 지난 한 달의 시간이 스친다.
서점을 오픈하고 좋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일부러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손에 커피와 빵 등을 쥐고 찾아와 준 손님들이 있었다. 응원하고 싶다며, 양손 가득 책을 잔뜩 사 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건 너무 기쁜 일이다.
그뿐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간이 나와서 북토크도 진행했다. 40년이 훌쩍 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 했던 부천의 오래된 건물에서 이사 와 번듯하고 깔끔한 새 건물에 서점을 열었느냐며 축하해주셨다. 내가 일군 공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이 많은 독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서점을 오픈한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게 쉽지 않은 시대에 버텨줘서, 또 이렇게 성장해 줘서 고맙다는 작가님의 말은 힘이 됐다.
그렇다, 지금의 시간은 한 때 나의 꿈이었다.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일, 매일 손님들을 만나는 일, 좋아하는 작가님을 모셔서 북토크를 진행하는 일, 내 꿈은 다 이뤄졌다. 이 정도면 행복한 거 아닌가? 괜히 점 보려고 했나 싶었던 찰나, 전화가 울린다.
“흠, 여름은 힘들어요. 좀 더 버티세요.”
막연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잘될 거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더 버텨야 한다니.
“네? 더 버티라고요? 언제까지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찔하다. ‘선생님, 저 이미 충분히 버틴 것 같은데요? 오픈 준비를 하면서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어요. 더는 이렇게 일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하루 쉬고 있고요, 근데 더 버티라고요? 앞으로도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매일 기다려야 한다고요? 일주일에 6일을 종일 이 공간에 얽매여 있는 것도 지쳐요’라고 말하려는데 선생님이 말을 이어 나간다.
“언니야 사주가 조금 시간이 걸리네. 대신 탄탄하게 만들어 나가니까 계속 버텨요. 가을부터는 좀 괜찮아질 테니까.”
*
가을부터는 괜찮아진다는 말에 욱했던 마음이 금세 차분해진다. 뭐든 빨리 결과물을 보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을까? 버티는 일은 자영업자의 숙명이다. 내 월급도 내가 만들어야 하고, 직원의 월급도 내가 만들어야 하는데, 적당히 남들만큼 일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버티는 일이 된다.
물론 그 책임감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책임감이 더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더 많이 일하는 것도, 책임감에 이따금 울고 싶은 것도 모두 자영업자의 숙명이다. 먹고사는 일에 피땀 눈물은 기본값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면 버티는 과정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강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월세 100만 원을 감당해 내는 그릇에서, 월세 550을 감당해 내는 그릇을 갖게 되지 않았는가? 버티고 생존하기 위한 모든 과정은 담금질해 나가는 일이다. 조금씩 강해지고 그렇게 좀 더 버티다 보면 또 기쁜 일이 있겠지. 일희일비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용하다는 선생님의 말씀 따라 가을을 기다리며, 또 내년에 온다는 좋은 기회를 기다리며 더 버티기로 마음먹는다. 버티는 와중에 찾아오는 기쁨도 감사한 마음으로 만끽하면 된다. 다시 마음이 편해진다. 용한 점집을 알려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대박 난 아이돌 제작자 알지? 원래 직장 다니다가 독립했잖아. 그 사람이 중요한 결정 할 때마다 가는 점집이 있대. 예약해 줄까?”
모든 일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는 법이다. 그저 오늘 하루의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새로운 꿈을 이루겠지. 이제는 나를 믿어야 할 때. 이제 운명도 내가 만들어 나가야지.
“가장 빠른 날로 예약해 줘. 새벽도 괜찮아.”
점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진짜.
글. 김경희
성장을 파는 서점 오키로북스의 CEO이자 작가. 《회사가 싫어서》, 《찌질한 인간 김경희》, 《할머니의 좋은 점》, 《비낭만적 밥벌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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