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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도 리더가 될 수 있다 by 이연아하 에세이 2023. 7. 14. 10:41
돌이켜보면 전부 필요한 혼자의 시간이었다. 일기를 쓰는 것, 요리하는 것, 스스로를 돌보는 것, 고독의 시간을 창조로 승화하는 것. 이처럼 혼자서 잘 지내는 요령을 터득하는 건 꽤 많이 유용하고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런 생활에 너무 젖어 들었을 때다. 세상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홀로 껴안고 산다. 심지어 연애도 포기한다.
그게 지난날의 내 모습이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언제나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시간만 좀 더 들이면 대부분 내가 해낼 수 있는 부분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또한 사람들에게 기대를 품고 실망하는 경험도 피하고 싶었다. 유튜브 채널도 고집스럽게 혼자서 운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늘 바빠서 시간이 없는 내게 친구는 편집자를 구할 것을 제안했다.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생기는 건 무척이나 든든한 일이란다. 그렇게 호사스러운 일을 기대해도 되냐고 물었다. “막연하게 기대고 의지하고 부탁할 사람을 찾으라는 뜻은 아니야. 그에 상응하는 존중과 대가를 지불하면 돼.” 빚지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레버리지라고 부른단다. 지렛대를 이용하면 실제 힘보다 몇 배 무거운 물건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용어였다.
나는 집에 돌아가 노트를 펴고 내가 하는 일들을 쭉 적어보았다. 그 안에서 다른 색깔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서 두 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전자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나눌까 고민해보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다짐했다.
-하고 싶은 일 : 그림그리기, 글쓰기, 문화생활, 사람 만나기…
-하기 싫은 일 : 메일 소통, 강연, 영상 자막 달기, 외근, 업무 미팅…
1. 택시
직업 특성상 여러 장소를 방문할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경로를 찾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는 건 퍽 지치는 일이다. 난생처음 택시를 타보기 시작했다. 택시는 레버리지의 시작 단계로 아주 좋다. 매번 다른 기사님을 만나기에 특정한 누군가를 고용할 부담이 없다. 아래와 같은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택시를 타도 된다. 나는 지금도 외부 일정이 있을 때 반드시 택시를 이용한다.
-일하러 갈 때 : 그날 하루에 버는 돈이 택시비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러 가는 길이라면 택시를 꼭 탈 것. 업무를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준다.
-사업자 : 여비 교통비는 비용처리가 된다. 특히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매입 항목이 적으므로 교통비 지출을 늘려서 사용해도 된다. 차를 사는 것도 괜찮지만 서울에서는 주차가 복잡하다는 점과 눈 감고 쉬면서 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나는 택시를 탄다.
2. 클리닝 서비스
가끔 일을 하는 것보다 청소나 정리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곤 한다. 화장실 변기를 박박 닦을 때엔 마감이 코앞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사무치게 들어서 서글프다. 이 같은 고민을 인생에서 삭제하기 위해 ‘미소’라는 서비스 어플에서 클리너를 고용했다. 처음엔 청소를 맡겨야 하는 상황인데 누가 오는 게 어색하고 머쓱해서 청소를 다 해놓은 채로 불렀다(?). 그럼에도 우리 집에는 청소할 구석이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되는 말끔함이었다. 이것이 락스 청소의 맛이었다. 한번 제대로 전문가의 손길을 맛보면 우리가 10대 때 교실에서 배운 청소 기술이 얼마나 허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은 미소 서비스를 이용한 지 2년이 지나서 꽤 익숙해졌다. 매번 꼬박꼬박 메모지에 썼던 청소 요청 사항 리스트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게 어색하면 클리닝 서비스부터 이용해보자. 인력 고용에 대한 경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3. 작가와 편집자
편집자를 구한다는 고민을 친구에게 우연히 털어놓다가 그와 같이 일하게 됐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인턴 기간처럼, 영상 편집하는 법을 직접 알려주고 훈련한 후 호흡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무산됐다. 너무 잘해서 2주 만에 바로 적응했기 때문이다. 새삼 충격이었다. 내가 해오던 영상 편집이 남들이 2주 만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니.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줄 마음과 호흡을 맞출 시간만 있다면 못 맡길 일은 거의 없다는 걸 배웠다. 물론 일에 대한 이해도는 기본이다. 자신이 잘 알아야 그만큼 제대로 맡길 수 있다. 지금은 두 명의 편집자와 한 명의 작가와 함께 일하고 있다. 출근이 없으며, 각자의 공간에서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아무도 출근을 안 시키면 된다. 그간 힘들었던 영상 편집과 이메일 소통을 대신 담당해줄 사람이 있으니 삶이 쾌적해졌다. 나는 남는 시간 동안 세상을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이나 그림으로 말하면 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해서 전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기사님이 운전을 업으로 선택한 것처럼, 나는 창작자이기 때문에 창작에 집중하는 것이다. 굳이 내가 못하는 운전이나 이동에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할 필요는 없다. 이처럼 우리가 안 해도 되는 일들이 따지고 보면 무척 많다. 직장에서 후배에게 일을 맡기며 일을 나누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다. 프리랜서라면 또 다른 프리랜서를 고용해보자. 어떤 일이든 잘 찾아보면 남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맡길 부분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전부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일 테니 말이다.
창작자도 리더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고뇌에 시달리는 창작의 시대는 한참 지났다. 옛날 화가들도 다 각자의 조수가 있었다. 이제부터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고 당신의 가능성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길 바란다.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거라 생각하는가? 거기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두려운 건 해보지 않았다는 불안 때문이지 그렇게 할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다.
글. 이연
2018년,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긴 시간 디자이너로서 일해오던 회사를 나왔다. 손에 쥔 것은 용기뿐이었기에 가난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한 해를 보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가져다준 그해 사계절의 기억을 엮어 오리지널 그림 에세이《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그리고, 썼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연 작가의 글이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3회)
1화. 나를 찾는 방법
2화. 나와 맞는 일을 찾는 방법
3화. 창작자도 리더가 될 수 있다(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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