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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맞는 일을 찾는 방법 by 이연아하 에세이 2023. 6. 18. 22:03
1.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면 아무도 안 시켜도 혼자서 계속하고 있는 일 중에서 찾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남기는 것이 전부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몰래 MP3로 노래나 낭독 같은 것을 녹음하곤 했었다. 그게 훗날 목소리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을 쉽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일기는 어릴 때부터 워낙 생각이 많아서 종이에 말들을 덜어놓기 위해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해왔던 일이다. 내가 쓰는 건 모조리 일기였는데 어느새 두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그림은 모든 아이가 그렇듯 말을 배우기 전부터 시작했다. 딱히 관둘 이유를 찾지 못해 서른이 되어서도 하고 있으며, 여전히 어릴 때처럼 고유의 재미를 느낀다. 전부 아무도 시키지 않고 혼자 했던 일들이었는데 그걸 이제는 85만 명의 구독자가 보고, 듣고, 읽고 있다.
2.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일
전업 유튜버가 된 지 3년. 누군가 만족도를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 다 먹고사는 일이 힘들다고 하는 세상에서 이토록 안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어찌 말할까. 그저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라 바쁘고 힘들다고 대충 둘러댄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본인의 일로 너무나 괴로워할 때에는 조금 다른 대답을 한다. 정적을 기다리고, 그 사람과 나만 있는 순간에 작게 속삭인다. “혹시 그 일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사실 곧바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일 하지 않아도 돼요.” 어떤 것은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독이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직장을 다닐 때 매일 몸이 아팠고, 항상 큰 병에 걸리는 상상을 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그저 내가 건강 염려증이 있다고만 말했다. 나는 나처럼 늘 아픈 사람이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내 관뒀다. 그냥 남들도 다 이 정도는 아픈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자신의 오장육부를 살핀다고 했다. 실제로 불편하면 소화가 안 되고, 편안하면 소화도 잘 되니 이를 기준으로 삼기 꽤 괜찮다 볼 수 있겠다. 잘 맞는 일을 하면 아무리 무리를 해도 몸이 크게 아프지 않다. 나만 해도 디자이너 시절 6년간 나를 괴롭혔던 위염이 디자인을 관둔 후에는 씻은 듯 사라졌다.
3. 운명적인 일
사람들은 운명의 사랑은 찾아도 운명의 일은 찾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일이 재미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재미가 없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냐 물을 것이다. 그래,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에 뭐라도 되나…. 창작자로서 늘 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 때문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늘 괴로워 죽겠다. 근데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일로 해도 재미있고, 돈이 안 되어도 재밌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이 일이 일이 아니었더라도 계속하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다면 어릴 적 놀이터에서 가장 놀고 싶었던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과 하라는 말이 있다. 일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장난감 중 가장 많이 갖고 놀았던 것, 그런 일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하다.
4. 미래에도 잘하고 싶은 일
그저 일이어서 하는 일들이 있다. 돈을 줘서 하지, 해야 해서 하지…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아주 많이 주어진다. 하지만 가장 근본으로 파고들면 아무도 그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 일을 지원한 것도, 그 일로 돈을 버는 것도,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부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이다. 책임을 바깥으로 전가하는 건 생각이나 선택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 스스로를 탓하기는 어려우니 일을 탓한다. 그리고 가짜 성취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딘다. 가짜 성취란 이런 것이다. 잘하게 되어도 그다지 기쁘지 않은 것을 성취하는 것. 퇴사를 고민하면서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일을 미래에도 잘하고 싶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일을 떠나셔야 돼요.” 지금 하는 일을 잘 정리하는 것도 내게 맞는 일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5. 남이 하면 질투 나는 일
2020년의 나는 29세였고 당시엔 코로나 초기로 미래가 심하게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대기업 디자이너로 살까, 아니면 퇴사를 하고 전업 유튜버로 살까. ‘전업 유튜버’라는 말 자체가 당시엔 대기업 디자이너라는 말보다 구리게 느껴져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친구가 디자이너로 성공했을 때와 유튜버로 성공했을 때를 비교한다면, 둘 중 무엇이 더 질투 나고 배가 아플까?’ 세상에 훌륭한 디자이너가 참 많다. 멋있지만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반면에 유튜버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려지지 않는 미래니까 도리어 내가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종종 질투가 나서 내 영상을 클릭하지 못했다는 댓글을 받는다. 일일이 답장하진 못하지만 언제나 속으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질투할 만한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이 질투가 난다면, 당신도 이 일을 하면 돼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이들은 집안에서 누리는 평온과 기쁨을 굳이 바깥에 말하지 않는다. 물론 저급한 배우자 욕을 농담이나 거짓으로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일이 주는 고단한 구석을 남들에게 토로하며 불만을 쏟지 않는다. 내가 그만한 참을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만큼 일에서 큰 만족을 느끼니 가능한 것이다.
요가를 할 때 숫자가 점점 줄어들면 그 숫자를 귀로 붙들며 얼마간 버틸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 속도계에 이 언덕이 얼마큼 남았는지 표시되는데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견디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아직 운명적 일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있다고 꼭 말해주는 게 조금이라도 응원이 되길 바란다. 실제로 내 현재 직업은 그림 크리에이터로, 이전에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 길을 만들고 걷고 있다. 이처럼 세상에 없는 직업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기꺼이 설렘을 갖고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길 바란다.
글. 이연
2018년,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긴 시간 디자이너로서 일해오던 회사를 나왔다. 손에 쥔 것은 용기뿐이었기에 가난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한 해를 보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가져다준 그해 사계절의 기억을 엮어 오리지널 그림 에세이《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그리고, 썼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연 작가의 글이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3회)
1화. 나를 찾는 방법
2화. 나와 맞는 일을 찾는 방법(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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