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인사이드 아웃’의 수집 방식 by 김도영
    아하 스토리 2023. 5. 15. 15:15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오늘날의 시대에서는 멋지고 획기적인 상품 하나를 잘 만들어 내놓는 것보다 그것이 누구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일련의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브랜딩하는 게 소비자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리고 가즈히로는 이를 인사이드 아웃방식의 경제로 구분합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구상하는 아웃사이드 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나 혹은 우리에게 존재하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해 점차 외부로 세계를 넓혀가는 방식이죠. 무엇인가가 탄생하기까지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게 가능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 프로세스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이 붙지 않는 땔감

    그런데 이 과정의 중요성이 의외의 부분에서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바로 '수집'이라는 영역입니다.

    세 차례에 걸쳐 '기획자의 수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왜 수집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결국 '무엇인가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추상적인 영감을 수집하든, 구체적인 지식을 수집하든, 남들이 흩뿌려놓은 경험과 생각을 수집하든 간에 우리가 열심히 모으는 이유는 그것들이 다시 우리의 손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로 재탄생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클 테니 말이죠. 설사 꼭 아웃풋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나에게 새로운 힘을 가져다줄 에너지원이자 땔감으로 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수집은 늘 '아웃사이드 인'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을 보고, 감탄하고, 잊지 않으려 저장하면서도 정말 이 인풋들을 좋은 아웃풋으로 연결하고 있느냐 하면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거든요. 마치 커다란 창고에 땔감을 잔뜩 쌓아놓고도 라면 하나 끓일 불조차 피우지 못하는 상황인 거죠. 그저 즐기는 수준에 머물 수만은 없는 '기획자들의 수집'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인사이드 아웃 하는 수집,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목표 지향적인 수집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수집하고 더 많이 수집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가 아닌, 어떻게 해야 내가 수집한 걸 더 잘 활용할 수 있고 더 의미 있는 결과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죠. 그리고 이 역시도 제가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방식들을 토대로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사실 책을 내고 난 뒤로 '어디서 글감을 얻느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는데요, 어쩌면 오늘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STEP 1 ] 수집의 목표를 정하자.

    고백 하나 하자면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미 활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낚시입니다. 그래서 친구나 지인들이 같이 낚시를 가자고 하면 적절한 거절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게 늘 고민거리입니다. 세상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일이야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건데 그 고생을 하러 굳이 강이며 바다를 찾아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낚시광인 지인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뭐라도 하나 걸려라 하는 생각으로 낚시하면 재미가 없을 수밖에요. 그건 마른하늘에서 열매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랑 똑같죠. 대신 '오늘은 이런 어종을 꼭 하나 잡아보겠다'라는 목표를 세우면 재미 포인트가 완전히 달라져요. 나름대로 작전도 세워보고, 고기랑 밀당도 하고, 그러다 운 좋게 원하는 어종이 한 마리라도 잡히면 그 경험이 정말 생생하게 기억되거든요. 그럼 그날 바다는 완전히 내 것이 된 느낌이죠."

     

    그 순간 제가 낚시라는 행위에 가졌던 수많은 오해가 벗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낚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느끼는 재미가 제가 뭔가를 수집할 때 느끼는 재미와 꼭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저는 전시회를 가든, 여행을 떠나든, 하다못해 책 한 권이나 영화 한 편을 보든 간에 수집의 목표를 정하면 그 경험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타인이 만들어놓은 결과물 위에 나를 띄워놓고 유유히 흘러가게 하는 것보다 내 나름대로 배의 키를 잡고서 그들의 바다를 항해해 보는 것이 훨씬 짜릿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냥 아무 편견이나 기대 없이 뭔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은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게 틀린 방법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연하게 마주치는 대상이 아니라, 계획하고 실행하는 행위에서부터 뭔가를 끌어내고 싶다면 작더라도 특정한 목표를 가져보는 게 우리 손에 훨씬 많은 것을 쥐여주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절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하게는 '이 콘텐츠를 보기 전과 후에 내 감정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목표는 세운 셈이거든요. 그러니 경험의 초점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맞추기보다 그걸 받아들이게 될 사람, 즉 나에게 맞추고 수집을 시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STEP 2 ] 수집의 과정을 공유하자.

    수집의 출발점을 ''로 설정했다면 이제 그 여정을 여러 방향으로 확장해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의 초반에 설명했듯이 인사이드(나에게서부터) 아웃(밖으로 뻗어가는)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저는 우리가 하는 수집이 어떤 형태로든 타인에게 공유되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런 걸 수집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고, 이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좋아요'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른바 자석 효과라는 걸 체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수집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면 유사한 성격의 콘텐츠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다가오기 마련이거든요. 마치 내가 자석이 되어서 주변의 다른 자석이나 철가루를 긁어모으게 되는 것처럼요.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이나 스토리 하나 올렸을 때만 기억해 봐도 이 자석 효과가 무엇인지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여러분이 보거나 읽은 콘텐츠에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콘텐츠를 추천해 주거나 각자의 감상을 보태주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까요. 심지어 나와 일면식이 없던 사이라도 내가 올린 태그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꽤 많죠.

     

    따라서 글로든, 사진으로든, 영상으로든 간에 여러분이 수집한 자료들 중 외부로 공개해도 좋을 만한 것들은 짧게라도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 타인에게 공유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SNS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지인들과의 단체방에 올리는 것도 손쉽게 해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타인에게 내 경험을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는 거니까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수집한 것을 담아두기만 할 때와 끄집어내서 표현할 때의 가치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SNS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제가 평소 읽은 책들의 감상평을 공유하는 정도로 인사이드 아웃 하고 있는데요, 놀라운 건 이 정도의 노력에도 정말 많은 피드백과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저 말고 여러분이 가진 영감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손에 집히는 것들을 테이블 위로 한번 꺼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 STEP 3 ] 수집한 것들을 튜닝해 보자.

    기획자의 독서란 책을 통해서도 소개한 내용이지만, 저는 제가 본 책이나 영화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새로 제목을 지어 붙여보는 취미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연히 방문한 카페가 너무 좋았는데 카페 이름이 살짝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공간을 직접 네이밍해 보기도 하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요상한 취향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노력들이 제가 기획자로 일하는 데 있어 꽤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이게 좀 별로네, 저게 좀 아쉽네'라는 평가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고칠 수 있는 포인트를 발견하고 수정해 보는 과정 속에서 전체의 경험을 더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를 수집했다면 '내 손으로 바꾸거나 보태 볼 만한 부분이 없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도 우리의 수집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어떤 기획이든 간에 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그러니 타인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을 완성의 형태로 느끼고 저장해 둘 것이 아니라 아직 미완성의 상태라고 상상하며 '나 또한 저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이다'라는 자세로 수집의 대상을 마주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인풋을 아웃풋의 땔감으로 잘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도 싶어요.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독자분께서는 자신의 경험담을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본인은 스포츠 의류 분야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분이라고 하셨는데요, 제가 책 제목을 바꿔서 붙여본다고 한 사례를 보고서 자신은 스포츠 선수들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며 어떤 인물이 어떤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릴지 가상의 캐스팅을 해본다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특정한 팀의 스폰서로 어떤 브랜드가 좋을지를 고민해 본다고 했죠. 제가 제안한 방법을 실천해 주신다는 것에 더없이 감사함을 느끼며 한편으로 저는 작은 확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께서 하고 있는 노력이 분명 좋은 결과물이자 에너지원으로 돌아올 거다'라는 확신 말이죠.

     

     

    수집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내가' 직접 선택했기 때문

    에이전시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직접 제품 개발과 브랜드 성장에 기여하며, 광고 회사의 모델을 재정의했다고 평가받는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올버즈, 캐스퍼 등의 브랜드를 탄생시킨 미국의 레드 앤틀러라는 회사죠. 레드 앤틀러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사이먼 엔드레스는 직원 채용 면접 때 딱 두 가지 질문만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습니까?
    그리고 그 영감을 통해 어떤 것을 실현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이 수집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 질문은 "여러분은 무엇을 수집할 때 즐거움을 느끼시나요?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것들은 여러분을 위해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을 테니 말이죠. 밖으로부터 수집한 것들을 어떻게 내 안에 잘 담아둘 것인지, 그렇게 담아둔 것은 또 어떻게 세상 밖으로 다시 내보낼 수 있는지, 이 고민이야말로 '기획자의 수집'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고민이자 질문이 아니었나 싶거든요.

     

    각자가 영감을 얻는 대상도, 방법도 천차만별이겠지만 저는 그 중심에 ''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것을 수집하든 간에 그 대상이 나를 거쳐갔다는 것만큼 중요한 사실은 없을 테니까요, 여러분이라는 필터를 통해 타인의 결과물이 새로운 땔감이자 연료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를 빨아들이기만 하는 블랙홀의 수집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빅뱅으로서의 수집에 집중해 본다면 아마 우리의 인풋과 아웃풋도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글. 김도영

    『기획자의 독서』,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저자이자 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브랜드가 좋아서 브랜딩 일을 하게 되었고, 브랜딩을 하다 보니 브랜드는 더 좋아졌다. 그렇게 일에서도 생활에서도 브랜드를 가까이하며 사는 삶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정보를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내가 먼저 경험하고 확신한 것들을 다시 내 이야기로 풀어놓는 것을 즐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챙기고 간직하려 한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글’을 가장 좋아한다. 솔직하게 써 내려간 내 글들이 작게나마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때 진정으로 행복하다. 어렵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비슷하지 않게 쓰고자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연재를 진행합니다

    <기획자의 수집>을 주제로 김도영 작가의 글이 매월 1회 연재됩니다.(총 3회/종료)

    1화. 넘쳐나는 인풋,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2화. 키워드 장악력을 기르자
    3화. ‘인사이드 아웃’의 수집 방식(현재글)

    Copyright 2023. 김도영 All rights reserved. / 본 사이트에 게재된 콘텐츠는 (주)위즈덤하우스서 관리하고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입니다. 사전 동의 없는 무단 재배포, 재편집, 도용 및 사용을 금합니다. aha.contents@wisdomhouse.co.kr

    댓글

all rights reserved by wisdomhouse 📩 aha.contents@wisdomhou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