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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이 좋다: 나를 위한 아침식사 by 임진아아하 에세이 2021. 4. 6. 20:45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인스타그램 기능 중 하나인 일명 ‘무물’을 자주 사용한다. 무물이라고 줄여 부른 다는 걸 “무물해줘서 고마워요!”라는 질문이 아닌 질문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해당하는 기능으로,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작은 공백칸이 24시간 동안 열린다. 24시간 안에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리에 다시 올리며 모두와 공유한다. 질문자가 누군인지는 나만 알지만, 대체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친구와 재밌자고 만든 인스타그램은 어느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에 보이는 계정이 되었으니까.
그저 나와 살던 개인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개인으로 살게 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보니 쉽게 질문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SNS에 일상 사진을 게시하면 어김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 어딘가요” 혹은 “컵 정보 좀 알려주세요” 등의 질문을 받지만, 이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어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대놓고 나에게 질문을 해달라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고 또 전혀 다른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나는 인스타 라이브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북토크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 무물 기능이 요즘 나에겐 독자와의 유일한 소통 창구이다. 서로의 표정을 가리고는 있지만 짧은 문장으로나마 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착한 질문에는 늘 아침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런 식의 질문들이다. 어제 올렸던 빵은 어디 빵집인가요, 제일 좋아하는 빵집은 어디인가요, 아침밥 매번 챙겨 먹는 사진에 힘을 얻고 있어요, 아이스커피만 마시나요, 원두는 어디에서 사나요, 얼음 가득한 커피 마실 때면 작가님 생각이 나요, 사진 속 드립포트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아침에 주로 먹는 샐러드에서 노란 건 감자튀김인가요, 최애 잼은 무엇인가요, 매번 아침 잘 챙겨드시는 거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져요, 어떻게 매일 아침을 챙겨 드세요? 등등.
SNS에서 보이는 나는 어째 아침부터 밝고 건강해 보이는 것 같다. 틀리지는 않았다. 나는 대체로 아침에 제일 힘을 빼고, 그렇기에 밝아지는 사람이니까. 아침밥을 절대 먹지 않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아침밥만큼은 진득하게 먹는 하루를 살고 있다. 빵이 좋아서, 커피가 좋아서, 아침에 마주하는 원 플레이트 식사가 좋아서지만, 무엇보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좋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또 근미래의 나를 사용하는 게 업무가 된 요즘, 가장 필요한 건 그러지 않고 나를 내버려 두는 쉬는 시간이다. 날을 잡고 종일 쉬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맛있는 걸 조금씩 자주 먹고 싶고, 쉬는 시간도 조금씩 자주 갖고 싶다. 그러다가 아주 맛있는 걸 먹으러 가듯이, 왕창 쉬어야만 나를 잃지 않는다. 맛있는 걸 자주 먹어봐야 맛을 알고, 일상적으로 쉬어야만 길게 쉴 때 잘 쉴 수가 있다. 내가 마련한 아침의 원 플레이트 식사 시간은 나에게 쉬는 시간이 되고, 또 그걸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 보는 사람들에게는 환기가 되는 것 같다. 카페에서나 먹을 법한 아침밥을 매일 차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이니까.
아침밥 차리는 게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 된 건, 그 안에 작은 삼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번 꽂힌 메뉴는 반복해서 먹길 좋아하지만 반드시 질리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역시 세 번 정도가 좋다. 빵은 매일 바뀌더라도 곁들이는 음식들은 작심삼일 주기로 바꾸고 있다. 감자튀김과 줄기콩을 함께 볶아 먹는 것도 세 번 정도, 다음에는 토마토와 로메인 상추로 샐러드를 만들고, 세 번 정도 먹으면 다음에는 과일을, 다음에는 버섯 샐러드를 먹는 식이다. 어째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면,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재료를 나에게 선사한다. 물컹한 버섯 샐러드를 계속 먹었다면, 오늘 마주한 아삭한 로메인 상추. 어제는 바게트 샌드위치, 그리고 도저히 아침을 차릴 힘이 없는 오늘은 바깥에서 내가 만들법한 샌드위치를 사 온다. 이런 사소한 변화만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려준다.
나는 작심삼일 편이다. 오늘의 마음을 삼일동안 유지하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마음을 단단히 먹을 필요도 없고, 그 마음이 사흘이나 넘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와 똑같은 마음을 틀에 찍듯이 반복해야만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틀에 찍어야만 완벽해지는 건 붕어빵과 호두과자 정도면 족하다. 매일 적당히 비슷하고 조금씩 변화를 주는 나날을 이어가기만 해도, 결국 크게 보면 하나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매번 다른 방식의 아침밥을 먹어도 늘 아침을 잘 챙겨 먹는 사람으로 보이는 나처럼.
작심삼일이 작심사일이 아니라 좋다. 역시 세 번이 좋다. 네 번은 너무 길게 느껴지고, 두 번으로는 아쉬우니까. 나는 오늘로 딱 세 번째의 줄기콩+감자튀김+식빵 조합의 아침밥을 먹었다.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아삭한 샐러드를 먹을 것이다. 부드러운 아침의 삼일이 지나자 몸이 외치고 있다. 내일까지 똑같이 먹으면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질려 하게 될 거라고. 내일 아침엔 자세까지 꼿꼿해지는 아삭함이 필요하다고 말이다.글. 임진아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연재한 만화로는 「엊그제」와 「임양의 사소한 일상」이 있고, 개인 작업으로는 〈괜찮씨의 하루〉, 〈이십대 쌀 상회〉, 〈인생 아마추어〉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직, 도쿄』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가 있으며,
그린 책으로는 『오늘도 대한민국은 이상 기후입니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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