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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심삼일 풀이 by 백가희
    아하 에세이 2021. 3. 10. 10:05

     

     

    한 달 전 신년을 맞이해 사주를 보러갔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네이버에 신년 사주 잘 보는 곳, 사주 예약, 사주 꼼꼼하게 봐주는 곳을 검색해 알아보기 바빴다. 

    괜한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알고보니 나 이번 해가 삼재의 시작이면 어떡해야되지? 뭘 물어봐야 하나? 사주 선생님에게 물어볼 나의 장래에 관한 질문을 메모장에 썼다. 무슨 말을 듣든 개의치 않아 봐야지, 설령 삼재라고 해도 난 절대 지지 않을 거야,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꼭꼭 씹으면서. 그럼에도 촌철 살인일 말들을 새겨 들으며 실이 될 법한 불행한 것은 되도록 피하겠다 생각하면서. 제발 올해만큼은 내가 해둔 결심을 착실히 이행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길 바라면서. 1월만 가득 채운 다이어리에, 월 초 3일만 발휘되는 작심삼일의 아이콘의 면모에 더는 실망할 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주에 금이 하나도 없어. 금이 끈기거든? 근데 너는 물이랑 나무만 많아. 금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의대, 법대를 도전해야 하는데… 물이 있으니까 그냥 계~속 흐르는 거야. 직업만 열두 개지. 그게 너야.”

    예상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촌철 살인 그 자체. 금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없는 것을 당장 태어난 일과 시를 조정해 살려놓을 수도 없으니 직업이 열두 개인채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스스로와 타협 중이었다. 시와 날짜를 보는 사람의 감각이란 이렇게 기민한 것인가, 마음 속에 차려진 협상 테이블을 눈치챈 것인지 사주 선생님이 덧붙였다.

    “꼭 뭐라도 따거나 마무리를 짓고 다음 일로 넘어가야 돼. 그럼 줄줄 샌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될 수 있어.”

    홀로 있을 땐 타협의 귀재가 되는 제가 무색해지면서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니 오싹해졌다. 결말을 뻔히 보이는 공포 영화에 뛰어든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작심 삼일이라는 공포 속에 직업만 열두 개가 되어 인물 설명에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주인공.

    사주를 듣고 복싱장에서 ‘작심삼일’과 ‘마무리’에 대해 생각했다. 복싱장도 연말에 새롭게 시작해보겠다고 이르게 결심해 하고 있는 취미 운동 생활이었다. 러닝을 뛰면서, 플랭크를 하면서, 위빙 스텝을 밟으면서도 당장 딸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느라 머릿 속이 혼란했다. 복싱의 끝을 보려면 어떡해야하지? 선수가 아닌가? 복서에 도전해봐야 하나. 그럼 어떤 계획을 세워야하지. 미래를 들여다보다 당장 다음 단계의 스텝을 다 잊었다. 멀찍이 서 있던 코치님이 다가와 오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똑같은 구간에서 도통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심 삼일에 빠지지 않으려다 작심삼분의 덫에 빠진 셈이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이어폰 안 쪽으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싯업보드에 다양한 자세로 앉아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저마다 탄식하기 바빴다.

    “야, 여기서 아이템을 쓰면 어떡하냐?”
    “그럼 니도 쓰던가.”
    “한 판 더 해!”

    복싱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죽상을 하고 복싱장의 문을 여는 사람들과 해맑게 출석하지만 하고 싶을 때만 운동하는 사람들. 전자는 나와 같은 성인들이고 후자는 아이들이다. 샌드백을 요란법석 치는 성인들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서로의 게임 방식에 대해 토론하기에 여념 없다. 가만 들어보니 매일 하는 게임도 다양했다.

    게임을 하다 잘 풀리지 않으면 거울 앞에 서서 줄넘기를 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도 버거워 탄식을 뱉는 나와는 다르게 가벼운 몸으로 폴짝폴짝 재주껏 손목을 빨리 돌려 2단 줄넘기도 했다. 어째 삼분도 안 뛰는 아이들보다 복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고심하던 내 진도가 더 느렸다.

    아이들의 재빠른 몸짓을 보다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올림픽 챔피언, 피겨 스케이팅의 황제 김연아 선수의 말이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하시나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답했다. 세계 신기록이나 올림픽 챔피언 같은 걸 떠올린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뜀박질을 하며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일들에 시달리며 오늘 밟아야할 다음 단계 스텝 하나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결연한 의지를 다진 연초의 어른들이 복싱장에 오지 않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복싱장에 나와있는 모습이 교차했다. 설령 충실히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작심 삼일이란 단어에 짓눌려 실패하는 자신이 두려울지언정 오늘의 할 일은 잊지 않는 듯했다. 숨 가쁘게 현실을 몰아내고 있지 않았다.

    인생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으면 어떤가. 작심삼일이라는 말로, 나의 끈기 없음을 한탄하다 흘려 보내기엔 오늘 할 수 있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방대한 삶의 기록을 단순히 몇 줄로 쓰고 말기엔 하루 사이에 놓인 자잘한 기쁨들이 기록해달라 외치고 있다. 시간내어 미래를 예견해주신 사주 선생님에겐 미안하지만, 직업이 열두 개인채로 삼일의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봐야겠다. 직업이 열두 개인데 그것도 살아보니 할만 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이란 시간 속에서 흘러가볼 것. 어떤 물길로 흐를 지는 아무도 모른다. 3일이 안 되어 폐기 처분되는 다짐들을 드문드문 만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낼 것이다. 카운팅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그냥 하는 ‘저스트 두 잇’의 정신으로.

     

     

     

     

    글. 백가희

    『당신이 빛이라면』『간격의 미』『너의 계절』을 내며 아름답고 감성적인 표현력으로 점차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일간 연재를 통해 자신의 창작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1riot_of_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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